일본 정부는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3년이 흐른 뒤인 1948년 우생보호법을 개시했다. 우생보호법은 “우생상의 견지에서 불량한 자손 출생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유전성 정신질환이나 유전성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본인 동의 없이도 정부 산하의 우생보호위원회 심사를 걸쳐 강제 불임수술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우생보호법은 1996년 모자 보건보호법으로 대체되면서 폐지됐지만, 최소 2만 5000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발생한 후였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은 어린 시절 변형성 관절증을 앓은 남성 와타나베 슈미(78)와 자신은 장애가 없는 70대 여성 A씨였다. 이들은 1955~1974년 본인 또는 가족에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강제 불임 수술을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각각 3300만 엔의 손배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었다.
와타나베는 동의 없이 불임 수술을 받았고, 여성 A씨는 20대 때 임신을 했었지만 당시 의사가 태아에게 장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낙태를 강요했다. 이후 임신을 막기 위해 역시 불임 수술을 받아야 했다.
교도통신의 2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구마모토지방법원은 우생보호법에 따른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해 소송을 제기한 2명에게 각각 2200만 엔(한화 약 2억 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법원 측은 “옛 우생보호법에 따라 인간의 생식 기능을 제거하는 것은 극도의 인권침해이자 행복추구권 침해”라면서 “현재는 폐지된 법 아래서 이뤄졌던 (강제 불임) 수술은 위헌이며,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교도통신은 “2019년부터 우생보호법에 따라 강제 불임 수술을 받은 사람에게 국가 보상금을 지급하는 법이 시행됐지만, 320만 엔(약 3040만 원)이라는 일률적인 보상금 때문에 비판을 받아왔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 자료에 따르면 우생보호법으로 강제 불임 수술을 받은 사람은 약 2만 5000명에 달한다”면서 “현재 유사한 소송이 일본 전역의 10개 법원 등에 제기된 상태이며, 이중 도쿄고등법원과 오사카고등법원은 국가에 손해배상을 명령했다”고 전했다.
반인륜적 강제 불임수술 배경은?일본 정부가 과거 강제 불임수술 정책을 펼친 것은 인구 조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쟁이 끝난 뒤 인구가 급증하면서 식량과 주거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고 반인륜적인 강제 불임수술의 피해자 중에는 특별한 병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혼슈 북동부의 미야기현에는 9세 소녀가 불임 수술을 당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아동보호시설에 있다가 정확한 내용도 듣지 못한 채 수술대에 올라 불임수술을 당한 10대 남성도 있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법 시행 과정에서 신체 구속 등을 용인했고, 지자체들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무리하게 수술 대상을 찾기도 했다.
우생보호법 피해자 구제 법안이 통과된 것은 2019년으로, 당시 일본 참의원은 피해자들에게 1인당 일시금으로 320만 엔의 보상금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지급 대상은 불임수술로 구제법 시행일 현재 생존한 피해자 본인으로 국한됐으며, 강제수술뿐만 아니라 본인이 동의한 경우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당시 일각에서는 법안 심의 당시 피해자 측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은데다, 국가 책임이 명확하게 적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이후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담화문을 통해 “구 우생보호법을 집행한 정부로서 진지하게 반성하고 마음속 깊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이런 사태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모든 국민이 질병이나 장애 유무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서로 인격과 개성을 존중하면서 공생하는 사회를 실현하는 데 최대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 차원에서 구 우생보호법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힌 것은 처음”이라면서도 “(아베 신조) 총리의 담화는 구제법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법적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