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사장에서 모래 위로 무언가 뾰족한 것이 솟구쳐 올라 있는 걸 본 에밀리아는 부모에게 “여기 이상한 게 나와 있어요”라고 말했다. 잡은 손을 잡아당기는 딸에 이끌려 간 아빠는 첫눈에 예사롭지 않은 걸 알아챘다.
언젠가 박물관에서 본 화석이 떠오른 것이다. 아빠는 가장 가까운 로렌소 스카글리아 시립자연과학박물관에 전화를 걸어 “바닷가 백사장에 화석이 묻혀 있는 것 같다”고 알렸다.
예상은 적중했다. 딸이 최초로 발견한 건 글립토돈 화석이었다. 글립토돈은 남미에서 화석으로 발견돼 그 존재가 확인된 빈치류 포유류로 아르마딜로와 비슷한 동물이다.
백사장에 얕게 파묻혀 있던 글립토돈 화석은 모두 2개였다. 특히 1개 화석은 과거 피아트가 만들어 중남미에서 인기리에 판매된 소형차 피아트600 정도의 덩치를 갖고 있어 박물관 발굴팀을 깜짝 놀라게 했다.
관계자는 “이렇게 큰 화석이 모래사장에, 이렇게 얕게 파묻혀 있었지만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놀라울 뿐”이라면서 “9살 여자어린이의 예리한 눈이 아니었다면 소중한 화석이 유실됐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학계에 따르면 글립토돈의 길이는 최대 4m, 키는 1.5m, 무게는 2톤 정도였다. 발견된 화석은 사실상 최대 길이를 가진 글립토돈이었던 것이다.
발견된 글립토돈은 250~300만 년 전의 것으로 보인다. 보다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화석 주변에서 발견된 퇴적물과 설치류 화석 등을 보면 대략 이 같은 추정이 가능하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글립토돈은 진화론의 기초를 확립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화석을 보고 깜짝 놀란 동물로 알려져 있다.
다윈은 비글해협을 여행할 때 선원들과 함께 아르마딜로를 잡아 요리해 먹은 날이 많았다고 한다. 아르마딜로 익숙한 다윈은 글립토돈 화석을 보고 유사성에 놀라 두 동물 간 관계를 연구했다. 다윈의 글립토돈 연구는 진화론을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됐다.
수백 만 년 전 남미에 글립토돈이라는 포유류가 서식한 사실을 세계에 알린 사람도 다윈이었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