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있다. 현지 언론은 “공동묘지를 노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는 건 일반 묘지가 아니라 주택형 묘지, 즉 영묘다. 아르헨티나의 주택형 묘지는 유럽풍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곳이 많다.
로마의 건물을 연상케 하는 기둥, 섬세한 조각 등으로 장식돼 있는 영묘에는 청동이나 구리로 만든 손잡이, 계단난간, 유골함 등 고철로 내다팔면 꽤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물건들이 많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차카리타 공동묘지.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차카리타 공동묘지에는 아르헨티나 명문가의 영묘가 다수 들어서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차타리타 공동묘지에선 최근 무게 100kg이 넘는 청동 유골함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절도피해가 발생한 영묘는 아르헨티나 투쿠만주(州)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 주정부 청사를 설계하고 지은 유명 건축가 가문의 소유였다.
피해자 가족들은 “청동 유골함에 고인이 된 가족 2분의 유골이 보관돼 있었다”면서 “유골까지 사라져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직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8개월간 차카리타 공동묘지에서 발생한 청동과 구리 절도피해는 최소한 48톤에 달한다. 익명을 원한 공동묘지 관계자는 “묘비에서부터 영묘의 문손잡이, 유골함에 이르기까지 구리나 청동으로 만든 것이라면 무엇이든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차카리타 공동묘지는 워낙 유서가 깊은 곳이다 보니 부에노스아이레스 경찰과 민간 경비회사가 함께 경비를 맡고 있다. 하지만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청동 유골함이 사라진 후 사건을 경찰에 직접 고발했다는 후손 라토레는 “무게 100kg이 넘는 물건을 훔쳐가는 게 간단한 일이었겠느냐”면서 “경찰이 지키는 공동묘지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경찰이 24시간 경비를 서는 건 맞지만 경비를 서는 경찰은 9명, 민간 경비회사 직원 4명 등 13명에 불과해 95헥타르에 달하는 차타리타 공동묘지를 지키기엔 경비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공동묘지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4월 아르헨티나의 소비자물가는 108.8% 올랐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97%로 인상하는 등 강력처방을 동원하고 있지만 고삐 풀린 물가는 잡히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공동묘지를 노린 절도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면서 “(후손들의 잘못으로) 세상을 뜬 선대들이 편안하게 영면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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