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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남긴 미국 내 유일한 건물…하버드 카펜터 시각예술 센터 [노승완의 공간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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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매사추세츠 하버드대학에 있는 카펜터 시각예술센터의 경사 램프는 본 건물과 30도 정도 꺾여 배치돼 건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투시도 효과와 함께 살짝 공간의 긴장감을 준다. 이러한 설계 기법은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도 적용됐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56)는 현대 건축의 개념을 정립한 ‘건축의 아버지’로 불린다. 1914년 그는 철근 콘크리트의 특성을 살려 ‘도미노 시스템’을 제안했다. 라틴어로 집이란 뜻의 도무스(Domus)와 혁명(Innovation)을 줄여 만든 용어다.

이는 최소한의 얇은 철근콘크리트 기둥들이 모서리에서 바닥판을 지지하는 구조로 바닥 슬래브와 몇 개의 기둥, 그리고 층을 이어주는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에겐 현재 익숙한 건물의 형태지만 당시에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혁신적인 건축 개념이었다.

스위스 태생으로 주로 유럽에서 활동했던 그가 유일하게 미국에 남긴 건물이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하버드대학교 내 카펜터 시각예술센터(Carpenter Center for the Visual Arts)다. 학창 시절 르 코르뷔지에의 10권짜리 작품집을 사서 그의 스케치 하나하나를 따라 그리며 공부했던 터라 실제 지어진 건물을 꼭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보스턴에서 그 소원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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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펜터 시각예술센터 코너 유리창을 지탱하는 수직 멀리온은 콘크리트로 미리 제작해 유리를 끼울 때 함께 시공했다.
근대 건축의 5원칙을 세우다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이 고안한 도미노시스템의 특성을 살려 근대 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우선 필로티(Piloti)를 만들어 기둥으로 바닥 슬래브를 위로 띄워 1층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둘째는 기둥이 바닥을 지지하고 있으므로 벽체를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어서 ‘자유로운 평면’이 가능해졌다.

셋째는 평면이 자유로워지니 입면(façade)도 구조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입면’ 또한 가능해졌다. 넷째는 넓어진 평면을 따라 수평으로 긴 창을 내어 외부 조망을 더 많이할 수 있는 ‘가로로 넓은 수평 띠 창’을 제안하였다. 마지막으로 건물이 들어서면서 잃게 된 조경면적을 옥상에 되찾아주기 위한 ‘옥상정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다섯가지 원칙을 100% 구현한 사보아 주택(Villa Savoye)을 1931년 파리 근교 쁘아시(Poissy)에 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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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펜터 시각예술센터 갤러리 옆에 있는 미니 테라스 정원.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남긴 미국 내 유일한 건물르 코르뷔지에는 예전 함께 일했던 경험이 있는, 당시 하버드대 디자인 대학원장으로 재직중이던 호세 루이스 세르트(José Luis Sert)로부터 카펜터 센터(1963년 완공)의 설계를 요청받았다.

그는 자신이 주창한 근대건축 5원칙을 여기에도 완벽하게 적용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당시엔 이런 전통적인 도시에 현대적인 건물이 들어서는 것이 합당하냐는 논쟁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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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펜터 시각예술센터 프레스컷 스트리트에서 이어지는 램프를 따라 올라가면 건물을 통과해반대편 퀸시 스트리트로 건너갈 수 있다. 건물의 형태와 입면이 다양해서 램프를 걸어가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건물의 형태를 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카펜터 시각예술센터 건물의 구조를 하나씩 살펴보면 건물의 경사 램프가 본 건물과 약 30도 정도 꺾여 배치되어 있어 건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투시도 효과와 함께 살짝 공간의 긴장감을 준다.

이러한 설계 기법은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도 적용되었는데, 아크로폴리스 정상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 옆을 따라 오르는 경사 램프가 신전과 평행하지 않고 살짝 기울어져 있어 투시도 효과가 극대화되고 긴장감을 고조시킨 후 램프 끝을 돌아서면 클라이막스인 정면이 드러나는 구조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의도적으로 이 기법을 반영했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그는 1911년 6개월간의 동방여행중 그리스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했다.

메인 공간인 3층에 위치한 세르트 갤러리(Sert Gallery)는 필로티로 띄워 배치했고 이 곳에 이르는 두개의 경사 램프가 각각 퀸시 스트리트(Quincy street)와 프레스콧 스트리트(Prescott Street)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 램프를 통해 거리를 걷다가 자연스럽게 건물로 들어왔다가 다시 반대편 도로로 나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건물 내부의 갤러리와 사무 공간을 볼 수 있고 잠시나마 비도 피할 수 있고 그늘을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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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펜터 시각예술센터 램프를 따라 건물 내부에 진입하면 좌우로 갤러리와 작업공간을 볼 수 있다. 
필로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플랫 슬래브, 즉 무량판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다소 위험해 보일 정도로 드롭패널(Drop Panel)이 없는 플랫플레이트 슬래브(Flat Plate Slab)로 시공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르 코르뷔지에가 워낙 슬래브와 기둥을 제외하고 다른 구조물이 노출되는 것을 싫어해서 드롭패널을 거꾸로 슬래브 위쪽으로 시공하고 모든 설비 급배기 라인도 별도 튜브 모양의 에어 필드 플로어(Air filled floor)를 바닥 슬래브 위에 설치해서 바닥 몰탈을 타설하여 해결했다고 한다. 

램프를 따라 갤러리 옆으로 가다보면 옥상 정원 형태의 소규모 정원을 볼 수 있다. 최초 계획에는 5층 옥상 위에 계획되어 있었으나 준공 때 옥상정원은 사라지고 대신 갤러리 옆에 작은 정원 형태로 수정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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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크리트 매스와 상대적으로 날렵한 램프 슬래브, 가느다란 필로티 기둥들이 모두 노출콘크리트로 되어 있어, 동일한 재료로 형태와 크기만 달리 조합하면서도 매우 다양한 입면을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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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펜터 시각예술센터 1층 필로티에 위치한 휴게공간. 노출콘크리트 벤치도 공간의 무게를 잡아주는 데 한 몫을 한다. 꾸밈없이 꼭 필요한 구조부재와 의자만 있는 텅 빈 듯한 느낌인데 전체적인 부재들의 조화와 비례감, 적당한 조도와 분위기, 공간의 무게에 매료되어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독한 노출 콘크리트 사랑르 코르뷔지에의 본명은 샤를 에두아르 쟌느레(Charles-Edouard Jeanneret-Gris)로 원래 화가가 되고 싶어 했고, 여러 화가들과 교류하며 1918년부터 1925년 사이에 퓨리즘(Purism·순수주의)을 추구했다.

이전 피카소의 큐비즘(Cubism)에서 자주 보이던 산발적인 장식을 배제하고 기본 형태에 충실하며 장식적인 디테일을 없애자는 운동이다.

그래서인지 건축을 하면서도 재료 본연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자 노출 콘크리트를 특히 즐겨 사용하였다. 그리고 노출콘크리트가 주는 육중하면서도 단순한 매스감과 함께 유리와 스틸 프레임 등을 주로 사용하여 재료간의 대비와 조화를 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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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펜터 시각예술센터 계단쪽의 육중한 콘크리트 매스와 얇은 필로티 원형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3층의 곡선형 콘크리트 매스가 대비된다.(왼쪽 사진) 상대적으로 가벼운 유리블록을 콘크리트 매스 사이에 넣어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하늘과 주변의 색을 반영한다.(오른쪽 사진)
필로티와 램프를 오가면서 건물의 자유로운 입면 형태를 살펴보다보면 건물 코너에 곡선을 따라 유리를 지지하고 있는 수직부재인 멀리온(Mullion)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알루미늄이 아니라 콘크리트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요즘 PC(Precast Concrete)라고 부르는 방식처럼 미리 현장에서 콘크리트로 제작해 놓고 창을 끼울 때 같이 설치하였다.

또한 그는 건물의 배치에 따라 태양빛이 실내에 미치는 영향을 매우 신중하게 고려했는데 태양의 고도에 따라 직사광선이 실내에 깊게 들어오지 않도록 차양을 세심하게 설계한다. 이 때 차양이나 루버(Louver)까지도 콘크리트로 제작하여 건물과 일체감 있게 계획하는 것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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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펜터 시각예술센터 건물은 콘크리트 차양 안으로 깊이 창을 넣어 직사일광을 차단하여 실내의 균질한 조도를 확보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한 카페를 방문했는데 마치 르 코르뷔지에의 손길이 닿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유사한 건축 기법들을 적용하여 무척 반가웠다.

외부의 수평띠창을 적절하게 분할하여 콘크리트-실제로 두들겨보니 GFRC(유리섬유보강 콘크리트)로 판단-로 차양을 내었고 내부 인테리어는 목재와 타일 등을 군더더기 없이 미니멀리즘적으로 계획하여 마치 퓨리즘의 재해석처럼 느껴졌다. 


근대 건축의 다섯가지 원칙이 적용된 건물을 실제로 보니 책으로만 보며 막연히 상상해보던 것과는 확실히 스케일감이 다르게 느껴졌으며 역시 건축 거장의 손길은 달랐다. 하지만 이 원칙이 소개된 지 백여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건축은 어떠한 원칙이 지배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매사추세츠 글·사진 노승완 건축 칼럼니스트·건축사·기술사 arcro123@hobancon.co.kr

노승완 건축 칼럼니스트·건축사·기술사 arcro123@hoban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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