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알게 된 고등학생 시절엔 ‘서른 즈음에’나 ‘이등병의 편지’의 가사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하드록(Hard Rock)과 소울(Soul)에 빠져 있던 때라 기교나 높은 옥타브가 아닌 날것에 가까운 목소리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이등병의 편지를 수없이 써본 예비역이 되어 학교로 돌아온 20대 중반. 어느 날 문화인류학 수업을 함께 들은 학우들과 신촌의 어느 술집에 앉아 두어 잔 기울이며 취기가 오를 무렵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그 노래는 1994년에 발매된 네 번째 정규앨범 수록곡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었다. 2003년 곽재용 감독의 영화 ‘클래식’에 삽입되면서 사람들은 다시 그를 추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그의 목소리가 좋아질 나이가 되어 버린 우리도 술잔을 들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여러 레스토랑과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했고, 민중가요 노래패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활동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1988년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의 도움으로 친구들과 함께 ‘동물원’을 결성했고, 1집과 2집 모두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2집 활동 후 김광석은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솔로 가수로도 큰 사랑을 받은 김광석은 4장의 솔로 앨범과 기존 노래들을 재해석한 ‘다시 부르기’ 1집과 2집으로 한국 포크 음악의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주로 소극장 공연을 통해 팬들을 만났고 1995년에는 소극장 1000회 공연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1996년 1월 6일 32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우울증에 따른 극단적 선택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시그리기길에서 다시 만나다2010년 대구 중구청은 대봉동에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을 조성했다. 약 350m 정도 되는 거리를 그를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울림을 주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벽면에는 미소년 같은 웃음을 짓던 그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곳곳에 그의 동상과 작품들이 놓여 있어 그를 추억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도시재생의 모범사례로 손꼽히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국내 대표 관광지 100곳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고등학생 시절 그의 목소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서울로 진학하면 꼭 해보고 싶은 20가지 버킷 리스트에도 김광석의 소극장 콘서트 관람이 포함돼 있다. 대학 진학 전에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를 직접 만날 기회는 영영 사라졌다. 요즘도 가끔 영화에서, 광고에서, 길거리에서 그의 목소리를 만난다. 그때마다 시간은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교훈을 느끼면서 그의 생전 모습을 보기 위해 동영상 플랫폼을 뒤져보곤 한다.
한정구 칼럼니스트 deepppock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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