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중의 두시기행문

유채꽃 바다를 가로지르는 봄길, 가시리 녹산로 [두시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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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산로 풍경


표선면 가시리마을 진입로에서 시작되는 녹산로는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가장 넓게 품어내는 길이다. 10㎞에 이르는 이 도로는 봄이면 유채꽃과 벚꽃이 동시에 피어나며 제주의 중산간을 노랗게 물들인다.

등산로처럼 시작과 끝이 분명한 길은 아니지만 녹산로를 따라 걷거나 달리다 보면 하나의 긴 탐방 코스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시리마을 초입에서 차를 세우고 길 위에 서면 시야를 가득 채운 유채꽃 너머로 완만한 오름들과 멀리 한라산 자락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중산간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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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산로 풍경


녹산로는 단순히 아름다운 봄길에 그치지 않는다. 이 길은 조선 시대 최고의 국영 목장이었던 녹산장이 있던 곳으로 예로부터 많은 말을 키웠던 초원이었다. 제주의 마문화 형성과 녹산로는 여기에서 비롯됐으며 말의 숨결이 스며 있는 역사 위를 지나가는 곳이다. 과거 나라에서 필요로 한 어승마(왕이 타는 말)와 갑마(최고 품종의 말)를 길러내던 초원은 지금 유채꽃밭으로 바뀌었지만 드넓은 공간이 주는 개방감은 그대로 남아 있다. 꽃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유채가 일제히 흔들릴 때면 초원을 달리던 말들의 움직임이 겹쳐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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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산로의 벚꽃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시리 풍력발전단지의 하얀 풍차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자연과 인공 구조물이 만들어내는 대비가 의외로 조화롭다.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회전하는 풍차 아래로 유채꽃이 펼쳐진 풍경은 녹산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장면이다. 이 지점부터는 등산에서 능선에 오른 뒤 조망이 트이는 순간처럼 시야가 한층 넓어진다. 녹산로의 진짜 매력은 속도를 늦출 때 드러난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잠시 차를 세우고 길 위에 서서 바람과 꽃향기를 마주할 때 이 길은 비로소 ‘탐방로’가 된다. 유채꽃 사이로 난 농로, 돌담 너머로 이어지는 초지,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구름까지 모두가 한 코스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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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산로의 유채꽃밭과 말 조형물


3월 말에서 4월 초가 되면 녹산로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벚나무들이 차례로 꽃을 터뜨리며 유채꽃과 함께 봄의 절정을 알린다. 아직 초원이 완전히 깨어나기 전 연한 분홍빛 벚꽃과 노란 유채꽃, 중산간의 맑은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은 화려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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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녹산장의 모습의 조형물


녹산로 인근에는 제주의 목축문화를 엿볼 수 있는 조랑말박물관과 완만한 능선이 아름다운 따라비오름, 갑선이오름이 자리해 짧은 산행을 곁들이기 좋다. 탐방을 마친 뒤에는 가시리·표선 일대에서 제주 흑돼지와 갈치조림, 고등어구이 등 제주 향토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중산간과 바다 풍경을 함께 담은 카페들도 곳곳에 자리해 여정을 마무리하기 좋다.

글·사진 김희중 칼럼니스트 iong563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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