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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도, 신경 세포도 필요 없다” 혼자서 학습하고 기억하는 단세포 생물의 비결 [와우!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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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배로 확대한 스텐터의 모습. 위키피디아


인간은 스스로에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명을 붙였다.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인데, 크고 뛰어난 뇌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단어다. 다른 모든 지구상 고등 생명체를 넘어서는 인간 특유의 정교한 인지 능력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차별화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단순한 뇌를 지닌 초파리나 심지어 뇌가 없는 해파리마저도 놀라운 수준의 학습과 기억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왔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교(UCSF)의 월리스 마셜 교수는 뇌는 물론 신경세포도 없는 단세포 생물도 탁월한 기억력과 학습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의 주인공은 ‘스텐터(Stentor)’라고 불리는 단세포 섬모충류다. 스텐터는 트럼펫 모양의 단세포 생물로 주로 민물에 서식한다. 단세포 생물치고는 꽤 거대한 크기인 2mm까지 성장할 수 있어 육안으로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놀라운 재생 능력과 복잡한 행동 양식을 보여 세포 연구의 모델로 많이 사용된 생물이기도 하다.

연구팀은 스텐터가 외부 자극에 어떻게 적응하고 기억을 저장하는지 규명하기 위해, 페트리 접시에 담긴 스텐터를 1분에 한 번씩 물리적으로 흔드는 장치를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반복적인 충격이 가해지자 스텐터는 점차 꼬리를 집어넣는 방어 행동을 멈추었는데, 이는 자극이 해롭지 않다고 판단하여 반응을 줄이는 ‘습관화(habituation)’라는 학습 현상이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연구팀의 발견 중 가장 놀라운 점은 학습 능력 자체가 아니라 이 학습 과정이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동물의 뇌세포가 학습할 때는 새로운 단백질을 생성하여 정보를 저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구팀이 단백질 합성을 저해하는 약물을 투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텐터는 오히려 외부 방해 요소를 무시하는 법을 더 빠르게 학습했다. 이는 스텐터가 새로운 단백질을 만드는 대신, 이미 세포 내에 존재하는 기존 단백질을 변형시키는 메커니즘을 통해 기억을 저장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연구팀은 후속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전기 충격을 이용한 외부 자극이 가해지면 스텐터 세포 내로 칼슘 이온이 유입되며, 이는 ‘CaMKII’라는 효소를 활성화시킨다는 점을 확인했다. 활성화된 효소는 특정 단백질에 화학적 표지(인산화)를 추가하여 단백질의 성질을 변화시키는데, 이 과정이 반복됨에 따라 스텐터는 자극에 대한 반응성을 점차 줄여나갔다. 따라서 학습 내용을 저장하기 위해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단세포 생물이 이렇게 영리해진 이유는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환경에 맞춰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무해한 자극에는 무감각하게 대응하며 진짜 위험에만 집중하면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학습된 정보가 세포 분열을 통해 딸세포로 전달된다는 점이다. 생존에 유리한 경험이 유전적 수준에서 후손에게 계승되는 셈이다.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도 흉내 낼 수 없는 단세포 생물만의 독특한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비록 스텐터와 인간의 구조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이번 연구는 두 존재 사이의 놀라운 분자적 유사성을 보여준다. 인간의 뉴런 역시 CaMKII를 사용하여 수용체의 민감도를 조절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학습이라는 고등 인지 기능이 뇌의 진화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온 근원적인 분자 시스템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뇌가 없는 단세포 생물조차 생존을 위해 어떻게든 학습의 방법을 찾아내는 자연의 경이로운 능력은, 복잡한 뇌를 가진 우리에게도 생명 본연의 가치와 끊임없는 탐구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고든 정 과학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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