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 속에 마약을 숨겨 베트남으로 들여오던 마약 조직 적발 사건과 관련해 11명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마약이 든 치약을 운반한 항공사 승무원 4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시작됐으며, 이후 베트남 전역으로 수사가 확대돼 2700명 이상이 피고인으로 이름을 올리는 초대형 사건으로 번졌다.
7일 VN익스프레스에 따르면 호찌민시 인민법원은 지난 3일 마약 밀매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27명 가운데 11명에게 사형, 19명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번 사건에서 마약 조직의 총책으로 지목된 A(52)는 아직 체포되지 않은 상태여서 법정에 나오지 않은 채 재판이 진행됐으며, 사형을 선고받았다. A에게는 1억 동(약 517만원)의 벌금도 추가로 부과됐다.
사형을 선고받은 나머지 10명에게는 각각 5000만~1억 동의 벌금이 추가로 부과됐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19명 가운데는 마약의 주요 보관 장소를 운영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들도 포함됐다.
이번 재판에는 유명 인사들도 피고인으로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베트남 가수 찌단은 불법 마약 사용을 조직한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자선활동으로 알려진 소셜미디어(SNS) 인플루언서 응웬 도 쯕 프엉은 같은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베트남에서 ‘안 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스페인 국적 모델 겸 배우 안드레아 아예르 카르모나는 불법 마약 사용 조직 혐의로 징역 7년, 마약 소지 혐의로 징역 1년을 더해 총 8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사건은 2023년 3월 16일, 떤선녓 국제공항 세관 직원들이 프랑스 파리발 베트남항공의 수하물을 검색하던 중 이상 징후를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수하물에는 치약 327개가 들어 있었는데, 이 가운데 무려 157개 치약에서 마약이 발견됐다. 치약 안에는 약 8.3㎏의 MDMA(일명 엑스터시)와 3㎏에 가까운 케타민이 숨겨져 있었다.
당시 해당 수하물을 운반한 사람은 베트남항공 소속 여성 승무원 4명이었다. 이들은 프랑스에서 베트남으로 약 60㎏의 소비재를 운반해 주는 대가로 1㎏당 6.5유로(1만원)를 받기로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수사 결과 승무원 4명은 치약 안에 마약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판단됐다. 마약 조직의 총책이나 다른 조직원들과 연락하거나 금융 거래를 한 정황도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당국은 이들에 대해 형사 처벌을 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기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여기서 수사를 끝내지 않았다. 호찌민시 경찰은 항공편 번호인 ‘VN10’을 사건명으로 삼아 치약 속 마약의 출처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수사 과정에서 프랑스 등 해외에서 국제특송을 이용해 마약을 베트남으로 들여온 뒤, 호찌민시와 인근 지역으로 운반·유통하는 조직의 실체가 드러났다.
총책으로 지목된 A는 같은 고향 출신의 운전기사에게 해외에서 들어오는 마약을 전달받도록 했고, 이 운전기사는 다시 친인척들을 끌어들였다. 운반책들은 한 차례 운반할 때마다 600만~5000만 동(32만~2650만원)이 지급된 것으로 조사됐다.
마약은 치약뿐 아니라 일상적인 소비재 등에 숨겨졌고, 택배와 운송 서비스를 이용해 여러 지역으로 이동했다. 조직원들은 텔레그램과 시그널 등 암호화 메신저를 이용해 서로 연락했으며, 타인 명의의 은행 계좌를 이용해 대금을 주고받았다.
수사는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경찰은 이 사건과 연결된 477건의 별도 사건을 수사했으며, 피고인으로 이름을 올린 사람만 2700명 이상에 달했다. 이번에 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진 사람은 그중 227명이다.
당국이 추적한 관련 거래 규모는 무려 약 29조 동(1조 5000억원)에 달했다. 압수된 마약만 거의 600㎏에 이르렀으며, 수사 과정에서 총기 12정과 탄약 67발, 수류탄 3발도 발견됐다.
베트남 당국은 이번 사건을 국내 역사상 최대 규모의 마약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재판은 지난달 17일 시작됐으며, 피고인 수가 227명에 달하면서 법원 본청과 치호아 임시구금시설을 연결한 화상 방식도 병행됐다. 검사 6명과 변호사 120여 명이 참여했고, 350쪽이 넘는 공소장이 제출됐다. 당초 9월 12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예정보다 9일 일찍 재판이 마무리됐다.
한편 베트남은 지난해 7월 1일 개정 형법 시행 이후 마약 불법 운반죄에 대해서는 사형을 폐지했지만, 마약 밀매죄에는 여전히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이번에 사형을 선고받은 11명 역시 마약 밀매 혐의가 적용됐다.
이종실 동남아 통신원 litta74.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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