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반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 (2)

작성 2007.07.10 00:00 ㅣ 수정 2007.07.1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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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연합회 소속 대학생 50여명이 지난달 25일부터 5일간 고구려의 옛 땅인 중국 동북지역 탐방을 떠났다. 동국대학교 윤명철 교수의 인도로 ‘코리아의 고구려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갖고 떠난 이번 탐방길을 사진과 글로 담았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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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압록강에 도착했다. 지도에서만 보았던 압록강에 와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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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아이들이 중국땅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 똑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북한이 중국과는 그나마 교류가 있다는 것이 한민족인 우리들보다 더 가까이 지내는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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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너머로 북한이 보인다. 멀게만 느껴졌던 북한과 강 하나 사이에 두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압록강은 백두산에서 뻗어져나오는 795km의 길이를 가진 강으로 결코 큰강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물자 교류의 요지로 선사시대때부터 고구려 6대 태조왕때까지 이 압록강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고구려 시대에도 압록강 하구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드라마 ‘주몽’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있는 소서노도 배를 타고 이곳을 지나갔을 것이다. 선사시대, 고조선, 고구려 모두 압록강지역은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을 교수님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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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변에서 북한의 담배와 우표를 볼수 있었다. 조선우표에 김정일이 나와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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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를 신기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이 창고는 고구려 시대 부경이라고 불리는 창고와 같다. 저렇게 보관하며 삶아 먹기도 하고 떡을 해먹기도 한단다. 고구려 시대에도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작은 창고가 있었다. 고구려 선조들의 지혜가 현재 중국인들의 삶속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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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 유적 ‘박작성’은 일부 남아있는 성벽만 현재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이 명나라때 쌓은 ‘호산장성’을 박작성 위에 복원하고 박작성의 흔적을 호산장성의 것으로 둔갑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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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장성 박물관에 박작성의 우물을 발굴할 당시 사진이 있었다. 그러나 사진에는 호산장성의 흔적으로 설명이 되어 박작성의 역사를 호산장성의 역사로 왜곡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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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작성에서 역사 왜곡의 현장을 확인한 우리 일행은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볼 수 있는 5호묘로 향했다.

5호묘는 입구까지만 촬영이 가능하고 안에서는 사진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있다. 기록을 담아갈 수 없게 하는 것이 야속했다.

5호묘에 들어가니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등 사방신(四方神)과 해신, 달신, 연꽃, 화염무늬 등 당시 샤머니즘을 나타내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곳을 개방한 뒤로 점점 그림들이 희미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때도 많이 희미해져 알아보기 힘들었다.

4호묘와 5호묘는 내부가 유사하여 4호묘는 개방 직후 곧 문을 닫았고 5호묘만 관광지로 개방하고 있다. 화강암에 안료를 가지고 그렸다는 신비함과 이곳을 볼 수 있다는 감동, 무덤이라는 두려움 등이 복잡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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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대로라면 아버지의 무덤인 광개통대왕릉에 먼저 가야했겠지만 시간상 아들인 장수왕의 묘로 추정되는 장군총을 먼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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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각각 3개씩 세워진 정호석. 총 12개의 정호석이 토목공학적인 균형을 이루어 왔는데 뒤쪽만 하나가 사라져 뒤가 점점 내려앉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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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총을 둘러본 후 갑갑한 방탄유리 안에 갇힌 광개토대왕비를 찾았다. 광개토대왕비 또한 고분들과 마찬가지로 촬영이 불가능했다. 문 밖에서 찍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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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광개토대왕릉에 올랐다. 정상에 올라 광개토대왕릉 위가 명당이라는 얘기를 나눴다. 물론 사실 확인은 해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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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부지런히 ‘환도산성’을 향했다. 환도산성은 산의 능선과 절벽 등을 그대로 활용한 고구려의 전형적인 고로봉식 산성으로서 평양의 ‘대성산성’, 단동 근처 봉성의 ‘봉황산성’과 함께 가장 큰 성이다.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 근처에 두어 대피성 겸 장기농성전을 위한 수비성으로 활용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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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산성을 나오는길에 국내성터를 지났다. 국내성터는 도로가라 내려서 볼 여건이 안됐다. 사진과 같이 창문너머로만 보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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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압록강변을 다시 지났다. 압록강의 야경과 함께 탐방 두 번째 날이 지나고 있었다. (계속)

☞고구려 역사유적탐방 “COREA의 고구려를 찾아서”(1)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김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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