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차전 누 캄푸 원정에서 극단적인 수비전술을 펼치며 0-0 무승부를 거뒀던 첼시는, 이날 전반 8분 만에 마이클 에시엔이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골을 터트리며 기선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램파드의 패스가 바르셀로나 수비수의 몸에 맞고 나오자 이를 에시엔이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시킨 것. 에시엔의 발을 떠난 볼은 크로스바를 맞고 그대로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후 경기는 첼시의 흐름 속에 진행됐다. 바르셀로나는 높은 볼 점유율을 기록하며 경기를 주도했으나, 첼시의 강한 압박과 밀집 수비에 막히며 이렇다 할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사무엘 에투, 리오넬 메시, 이니에스타 등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이끈 삼각편대 모두 바르셀로나 특유의 패스게임이 살아나지 못하자 슈팅을 날리는데 있어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경기는 막바지로 접어 들었고, 바르셀로나는 여전히 첼시의 압박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오히려 후반 20분 왼쪽 수비수 에릭 아비달이 니콜라스 아넬카에게 파울을 범하며 퇴장, 10명이 뛰어야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승기를 잡은 거스 히딩크 감독은 디디에 드로그바를 빼고 수비수 줄리아누 벨레티를 투입하며 굳히기에 들어갔고, 다급해진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은 신예 보얀을 투입하며 마지막 승부수 띄웠다. 결과는 바르셀로나의 승리였다.
4분이 주어진 추가시간, 페널티 박스 측면에서 메시가 내준 볼을 중앙에 있던 이니에스타가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시키며 굳게 닫혀있던 첼시의 골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첼시는 결승문턱 직전에서 좌절해야 했고, 바르셀로나는 그야말로 경기막판 기적을 연출해 냈다.
히딩크로선 지난 2005년 PSV 아인트호벤 시절에 있어 또 다시 ‘4강 징크스’에 발목을 붙잡힌 셈이다. 당시 1차전 원정에서 AC밀란에 0-2로 패한 아인트호벤은 2차전 홈에서 3-1로 승리했으나 경기종료 직전 허용한 암브로시니의 원정 골에 의해 고개를 떨궈야만 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히딩크는 추가시간 4분을 버티지 못하며 끝내 로마행 티켓을 바르셀로나에게 내주고 말았다.
마치 저주와 같이 히딩크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4강 징크스를 넘지 못하고 있다. 2002년에는 독일에 패했고, 유로 2008에서는 스페인의 벽을 넘지 못하며 4강에 머물려야만 했다. 매번 기대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한 것은 사실이나, 늘 4강에서 떨어지는 한계를 맛봐야 했다.
한편, 히딩크의 징크스는 계속됐지만, 첼시의 패배로 인해 2003/04시즌 이후 계속돼 오던 레알 마드리드의 저주는 막을 내렸다. 레알 마드리드를 꺾은 팀을 이길 경우 우승한다는 레알 마드리드의 저주는 올해 첼시가 레알 마드리드를 격파한 리버풀을 꺾으며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끝내 히딩크 저주에 밀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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