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태극전사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부문에 출전해 금메달을, 이승훈이 스피드스케이팅 5,000미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이정수가 쇼트트랙에서, 모태범이 빙속 500미터에서 금을 캐기도 했다. 비록 메달권가는 거리가 멀지만 스노보드와 스키점프, 루지 등에서도 소중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한국 스노보드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김호준(20)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남자 하프파이브 예선 1조 경기에서 12위에 올라 아쉽게도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비록 ‘메달 따기’에는 실패했지만 수준 높은 기술을 선보여 강한 인상을 남겼다. 김호준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기까지, 무려 11년 동안 함께 생(?)고생한 자가 있다. 바로 전직 국가대표 스노보더 출신인 김수철(34) 코치다.
지난 25일, 아직도 밴쿠버 올림픽에서 느낀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김수철 코치와의 특별한 오후를 만끽했다.
◆ 밴쿠버행 오른 태극전사 “이상무”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 호강하고 있어요.”
지난 9일, 올림픽 국가대표단과 함께 밴쿠버로 떠난 김수철 코치가 뜨끈한 현지 소식을 전했다.
밴쿠버는 6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를 지켜온 만큼 경기를 위해 방문한 외국 선수들에게도 후한 대접을 해주고 있다. 밴쿠버 올림픽 빌리지에 마련된 깨끗한 숙소는 물론 훌륭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태극전사들은 호사를 누리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인에 맞는 감칠맛 나는 식단이 ‘부재중’이라는 것. 이에 김수철 코치는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인들은 동아시아권 음식을 먹고 있어요. 볶음밥, 볶음면 등 기름진 요리가 많아서 속이 좀 거북해요. 다행히 김치는 있죠!”라며 웃었다.
김수철 코치는 올림픽으로 열기가 달아오른 생생한 밴쿠버 현장도 그렸다. “곳곳에서는 축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어요.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해피 올림픽’이라고 외쳐요. 특히 밴쿠버 아트갤러리 앞에는 동계올림픽 카운트다운 시계가 대회 시작시간을 시·분·초 단위로 알리며 긴장감을 고조시키죠.”라고 전했다.
◆ 김호준,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9살 때 처음 스노보드를 접한 김호준은 1999년 첫 출전 대회였던 제 53회 전국스키선수권대회 하프파이브와 대회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유망주로 떠올랐다. 이후 2006년 FIS 스노보드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 2008년 스위스 레이즌 유럽 월드컵 등에서 ‘줄줄이’ 우승을 따내면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대한민국 첫 올림픽 출전, 김호준은 대한민국 스노보드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비록 첫 점프 착지에서 엉덩방아를 찧는 귀여운(?) 실수를 했지만 고난도의 공중 3회전을 두 차례나 깔끔하게 성공시켜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 버금가는 실력을 발휘했다.
대회 후 김수철 코치는 ‘깜짝’ 놀란 만한 사실을 밝혔다. 김호준이 거의 메달을 손에 거머쥘 뻔 했다는 것!
김수철 코치는 “하프파이브는 5가지 기술을 보여주는 경기인데 호준이는 마지막 하나를 성공시키지 못했어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도전했던 4가지 테크닉들은 모두 최고 점수를 받았더라고요.”라며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이어 “이번 첫 출전을 밑천으로 4년 뒤 열리는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서는 반드시 메달권 안에 들 수 있다고 확신해요. 김연아처럼 김호준도 시상대에 분명 오르게 될 것.”이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 우리는 ‘배고픈’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가 자비를 들여 전지훈련을 간다?’
영화 ‘국가대표’를 통해 국가대표 스키점프 선수들이 변변한 연습장도 없이 점프대 공사장을 전전해야 했고 제대로 된 보호 장구나 점프복도 없이 오토바이 헬멧, 공사장 안전모 등만을 쓰고 맨몸으로 훈련에 임하는 등 일명 ‘무대뽀 트레이닝’을 받으며 고생했던 과거를 확인했다.
스노보드 국가대표팀도 변변찮은 지원으로 쩔쩔매는 점은 매한가지. 심지어 선수가 직접 자비를 들여 해외로 전지훈련을 다녀온다.
‘투자가 힘’이라는 점을 강조한 김수철 코치는 “선수들이 겨울 시즌 동안에도 하프파이브가 오픈 가능한 한정 기간 동안에만 훈련을 받을 수 있어요. 비시즌 동안에는 개인 자금으로 해외 원정을 나가곤 했어요.”라고 밝혔다.
세계를 뒤흔든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급성장에는 강한 훈련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공격적인 지원전략이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즉, 적극적인 투자가 있어야만 메달 획득까지 가능하다는 것.
김수철 코치는 “겨울이 짧고 저변이 엷은 한국 설상종목의 환경이 유럽과 북미지역에 비해 열악한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장기적인 계획수립과 능동적인 선수지원만 뒷받침된다면 금메달도 바라볼 수 있어요.(웃음)”라고 말했다.
사진 = 스노보드 국가대표 코치 김수철 코치 제공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