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무엇이든 세우는 남자, 직접 만나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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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든 세우는 男
변남석(51)씨가 성남시에 있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돌 쌓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여기 중력을 가지고 노는 한 남성이 있다. 그는 크고 작은 돌멩이는 물론 심지어 오토바이, 냉장고, 자동차 등 무거운 사물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모서리로 세워 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조형미를 연출한다.

그는 “놀이죠. 좋아서 하는 거에요.”라고 말하지만 사뭇 진지한 그 눈빛은 사물에 혼을 불어넣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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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형상의 아름다움(美)을 선보인 이는 밸런싱 아티스트(Balancing Artist) 변남석(51) 작가. 현재 분당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성남시가 탄천에 마련해준 작업장에서 수시로 기이한 형태의 돌탑을 쌓고 있다.

▲기인에서 아티스트가 되기까지

수년 전 마니아 팬층을 확보한 변 작가는 자신이 산이나 바다, 강 등에서 쌓아올린 작품을 직접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 등 인터넷에 올려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 같은 활발한 활동으로 그는 ‘스타킹’, ‘생활의 달인’ 등 오락 방송 프로그램은 물론 서울시를 홍보하는 영상에도 출연했다.

이런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서 공개됐고 그의 돌 쌓기 영상은 상당한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아랍 왕자의 초청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두바이 몰에서 공연하는 값진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그는 국내 유명 사진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룹전에 참가했고 그의 작품은 미술품 경매를 통해서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그는 단순한 기인(奇人)에서 설치미술가이자 사진작가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변 씨가 말하는 ‘밸런싱 아트’란 무엇일까. 이는 돌멩이나 일상 생활용품 등 작가가 원하는 재료를 산이나 바다, 생활 속 등 원하는 배경에서 절대 중심을 잡아 세우는 퍼포먼스적인 설치 미술과 원하는 구도로 촬영하는 사진 예술은 물론 여기에 작가의 의도가 더해진 복합적인 행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돌을 세우는 작업은 극도의 집중력과 균형 감각을 요구하지만, 작가는 이를 놀이처럼 여기며 즐기고 있고 자신만의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표현하기 때문에 이 분야에는 그가 유일무이하다고 할 수 있다.

▲ 밸런싱 아티스트
변남석 씨가 성남시에 있는 작업실에서 오토바이를 세우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취미가 직업으로

밸런싱 아트의 탄생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춘천에 있는 등선폭포를 방문했던 그는 물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길쭉하고 큰 돌을 세우고 그 위에 동그랗고 작은 돌을 올렸고 이를 사진으로 찍었던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집에 와 큰 화면으로 봤더니 거기에는 어떤 여인이 있었어요. 다소곳한 모습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의 여인이 있었는데 전 느낀 거죠. 이 여인이 나를 기다렸다고…. 전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이게 부서져 없어질까 봐. 누군가 가져갈까 봐. 날이 밝자마자 바로 다시 그곳을 찾아갔죠.”

이렇게 다시 사진 속 여인과 만나게 됐다는 그는 돌을 쌓는 것이 멋진 취미가 될 거 같아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했던 그는 당시 분당에서 실내스키장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틈나는 대로 중심 잡기 연습을 해야 했다.

“사무실에서도 하고 저녁에 잠자기 전에도 내가 원하는 어떤 돌을 세우고 자고 또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원하는 조합의 돌을 세우고 나서 또 힘차게 하루를 시작했죠.”

한 개의 돌을 쌓기 위해서 백번 이상 연습했다고 하여 별명이 ‘백번연습’이 됐다는 그는 마침내 ‘밸런싱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개척하게 됐다.

▲ 거부와 끈기
변남석 씨가 성남시에 있는 자신의 작업장에서 돌 쌓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이런 변 작가도 ‘이 돌이 과연 설까?’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고 한다. 이때마다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누구나 다 같은 느낌일 거에요. 수준이 낮더라도 뭔가를 한 번 성공 하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어려워도 기어이 할 때까지 하거든요.”

백번연습이란 별명에 걸맞게 그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고 생활 속에서도 하고 저녁에 잠자기 전까지도 중심 잡기를 연습했다.

“일하는 시간 빼놓고는 전부 연습했어요. 어떤 경우에는 한두 시간 하고 나서 눈이 피곤하고 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했었는데 그만큼 저를 집중하고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거 같아요.”



탄천 작업장 이름이 ‘거부와 끈기’가 된 것도 그의 자신감과 노력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작업은 돌을 고정 하지 않는 것이기에 바람이 세게 불거나 새가 잠시 앉을 때, 심지어 비가 좀 많이 올 때도 돌은 쓰러진다. 여기에 더해 가장 큰 거부의 요인은 아이들이 던진 돌이라고.

“아이들이 돌을 던지는 거에요. 그래서 가슴까지 오는 장화를 사 신고 더 깊은 곳에 들어갔는데 결과는 너무 환상적이었어요.”

물가에 세운 돌을 사진으로 찍으면 그 배경 때문에 형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물살이 잔잔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형상이 잔상으로 비춰 환상적인 결과물을 보여준다고. 거부의 요인이 결국 훨씬 더 좋은 사진을 얻게 해줬다는 것이다.

▲사소한 것도 역할이 있다는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다

변 작가는 물체의 중심 잡기를 위한 수많은 노력 끝에 세상의 작은 이치마저 깨우치게 됐다.

“돌 위에 돌 하나를 올릴 때도 있지만 여러 돌을 다 맞춰 중심 잡을 때도 있어요. 돌마다 다 각자의 역할이 있죠. 중간에 작은 돌이 들어가지만, 이 돌이 없으면 어떤 경우에는 세워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땅바닥에 있을 때 돌은 단순히 걸림돌일 수 있지만, 이 돌을 쌓게 되면 작은 돌이든 큰 돌이든지 각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저 역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작지만 큰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또 돌을 볼 때마다 내 존재감을 나타내고 가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세상 모든 사람이 전부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다.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단지 빛나고 안 빛나는 거 같아요.”

▲탱이길 조성하는 게 첫 번째 꿈

작가는 자신이 쌓아올린 돌멩이를 ‘탱이’라고 부른다. 이는 제주도 말인 돌탱이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의 작업장이 있는 탄천의 길이는 17km다. 그는 탄천 주변에 자신이 쌓은 탱이로 조성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걷기 좋은 길, 예술이 있는 길, 불가능이 없다는 메시지가 있는 그런 길을 제가 만든 게 첫 번째 꿈입니다.”

▲ 탱이
변남석씨가 성남시 탄천에 있는 작업장 ‘거부와 끈기’에 ‘탱이’로 부르는 돌탑을 쌓아놨다.



사진·영상=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글=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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