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 머터리얼이 2차 대전 당시 강제 동원됐던 미군 포로들에 대해 공식 사과입장을 밝히면서도 영국, 네덜란드, 한국 등 다른 피해 국가는 언급하지 않아 논란이 된 가운데, 영국 참전군인 유가족들이 미쓰비시의 태도를 성토하고 나섰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미쓰비시의 강제노역 피해자면서도 미국인들과는 달리 아직 적절한 사과를 받지 못한 영국인 피해자 및 그 유가족의 이야기를 19일(현지시간) 소개했다.
1942년 일본군 포로로 잡혔던 영국군 제임스 깁슨은 3년 동안 미쓰비시 소유 탄광 및 조선소에서 가혹한 강제노역에 시달린 뒤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 받다가 1982년 사망했다. 제임스 깁슨의 아들 샌디 깁슨을 비롯한 유가족들은 미쓰비시가 제임스의 고충에 대해 지금이라도 직접 사과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제임스가 갇혀 있던 포로수용소는 깊은 산속에 위치해 기온이 매우 낮았지만 포로들에겐 원래 입고 있던 얇은 옷 이외 어떤 의류도 지급되지 않았다. 적십자 구호품은 일본 군인들이 독식했기에 포로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었다. 부족한 물자에 배가 고파 소량의 음식을 훔친 병사는 잔인하게 구타당한 뒤 처형되기도 했다.
1945년,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뒤 제임스는 마침내 포로 신분에서 풀려날 수 있었지만 가혹한 취급으로 생긴 심신의 피해는 지워지지 않았다. 굶주렸던 기억 때문에 항상 강박적으로 많은 식량을 집안에 비축해두고 살았으며 말년에는 많은 건강상의 문제를 겪다가 암으로 사망했다.
제임스는 뒤늦게라도 사과가 이루어졌다면 아버지는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대부분의 전쟁포로 출신 영국인들은 사과를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조차 없이 살다가 죽었다”며 “그들은 모두 수많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질병을 안고 살아야만 했고, 지금도 지속적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95년에 사망한 또 다른 강제노역 피해자 레슬리 휴튼의 아내 베라 휴튼은 설령 사과가 이루어지더라도 이미 지나치게 늦었다고 얘기한다. 그녀는 “지금 이루어지는 사과는 본인들이 아닌 그 증손들에 의한 것일 뿐이니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전쟁 당시 미쓰비시가 운영한 6개의 강제 노역장에서 일한 전쟁포로는 총 2000여명, 그 중 30%가 넘는 672명은 영국인이었으나 미쓰비시는 당시 미군 포로였던 제임스 머피를 위시한 미국 피해자들에게만 사과했을 뿐 다른 국가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미쓰비시는 현재 캘리포니아의 고속철도 프로젝트 경매 입찰에 참여하는 등 미국 내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텔레그래프 캡처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