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김영탁의 시식남녀] ‘아구, 통술 공화국’을 찾다

작성 2016.09.20 14:36 ㅣ 수정 2016.09.2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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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육이다. ‘아구 공화국’의 수석 공민이다. 널리 알려진 것이야 아구찜이겠지만 식재료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양념을 최소화한 수육을 먹을 필요가 있다.


‘마산’하면 ‘아구찜’이다. 서울이나 전국 어디를 가도 온통 ‘마산아구찜’식당이다. 상관없다. 마산 아구찜은 이미 전국구이기 때문이다. 원조 논쟁? 역시 중요하지 않다. 그냥 마산이다. 마산은 아구찜 식당마다 제각각 하나씩 아구의 일가를 이뤄왔다. 말 그대로 '아구 공화국'인 셈이다.

마산역으로 마중 나온 이상옥, 성선경, 이주언 시인을 만났을 때 마산역 광장의 시계탑은 오후 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끼니를 놓친 시인 무리들은 오동동할매아구찜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표준어는 '아귀'다. 하지만 이 지역 말로 '아구'라고 불러야 금세 입속에 침이 고인다.

아구는 생긴 모양이 흉측하고 못생겨서 바닷고기가 흔할 땐 어망에 걸려도 어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다에 던져버린 생선이다.

이제는 껍질과 내장, 아가미, 지느러미, 꼬리 또한 특유의 맛이 있어 뼈만 남기고 알뜰하게 발라 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껍질은 콜라겐이 많아 사람의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 아귀의 간은 비타민A가 많아 고소하고 진하며 남자들의 강장식품이다. 요리는 찜, 탕, 수육 등이 있다.

지방마다 요리방법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원조 격인 마산 지역은 아귀를 말려서 다시 불렸다가 아주 매운 양념으로 요리하는 것이 특별하다.

지금도 말린 아구로 아구찜을 만드는 식당이 있는데, 연세 드신 분들은 말린 아구찜이 오리지널이라며 그 맛을 만끽하기도 한다. 옛 음식은 이렇듯 추억 혹은 익숙함으로 형체를 바꿔 DNA에 각인된다.

하지만 말려서 꾸득꾸득한 마산 특유의 아구를 제외하고 생아구찜과 탕, 수육을 시켰던 것은 성선경 시인이 결정한 듯하다. 마산 특유의 아구를 주문하지 않은 이유는 나중에 이주언 시인의 설명을 듣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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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구수육을 편애할 필요는 없다. 아구찜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마산에 들렀다면 마산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아구찜을 먹어야 한다.


그의 입을 빌려 보면, 생아구로 만든 것보다 말린 아구 맛이 덜했다고 한다. 생선은 신선도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옛날에는 아구를 말려서 보관해두었다가 콩나물 등을 넣고 찜요리를 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생선을 보관하기 위해 말려야 했고, 말린 생선은 신선도가 떨어져 국물 맛이 잘 우러나지 않고, 그래서 여러 가지 야채를 넣고 찜요리로 만든 것 같다는 설명이다.

일행들은 한편으로는 마산막걸리잔 기울이느라, 한편으로는 아구찜과 수육을 오가며 젓가락질하느라 고개를 주억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시의 거리

마산의 시인들은 타관에서 온 시인의 손을 '시의 거리'로 잡아 끌었다. 시를 돌에 새겨서 세워놓은 소박하고 조용한 공원이었다. 마산이 한눈에 보이는 중심부여서 사방팔방으로 트였다.

'누나야 석류꽃이 피었습니다/ 푸르듯 붉은 꽃이 가지마다 피었습니다/ 오월달 맑은 날에 잊은 듯이 피었습니다/ 누나가 가신 날에 잎사귀마다 그늘지어/ 하늘가 높은 곳에 몸부림치며/ 그때 같이 석류꽃이 피었습니다'('석류' 전문)

현촌 김세익(1924~1995) 시인의 시비는 날개 형태로 날아가는 돌 같다. 김세익 시인은 함경남도 홍원 출신으로 마산여고 교사로 10년을 마산에서 살았다. 이석(본명 이순섭·1925~2000)을 비롯해 조두남, 이은상, 이원수, 임화 등 수많은 시인과 예술인들을 배출하고 보듬은 마산의 품은 넉넉하고 따듯한 남쪽 도시이며 출렁이는 바다를 거느리고 있다.

마산은 '가고파'의 고장, 곧 노산의 고장이다. 또한 3·15 의거의 고장으로 그 정신을 강조하다 보니, 옥에 티 같은 노산의 흠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볼 수도 있을 법하다. 노산문학관이 될 뻔하던 건물은 마산문학관이 됐다.

전북 고창에는 미당문학관이 있다. 친일 흔적은 흔적대로 두고 미당의 문학적 업적은 업적대로 기리고 있다. 좀더 시간을 두고 객관적인 접근이 이뤄진다면 노산의 공과 역시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

합포만을 통째로 담은 통술집

'통술집'이라는 말이 궁금했다. 도대체 '통술'이 뭘까? 뭔가 큰 인심이 배어 있는 듯도 한데…. 술집은 바닷가의 특성을 잘 살린 곳이다. 술집이라고 부르기엔 먹거리가 너무 풍부하고, 음식점이라고 부르면 찾아가는 목적에 어긋나는 느낌이다.

'통술집'은 식사를 하지 않고 찾아야 한다. 여기서 나오는 여러 가지 안주는 밥이 될 만큼 충분히 먹고도 남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안주로 만들어내기에 바다를 통째 안주로 낸다는 의미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요즘은 치킨 같은 다른 안주가 한두 가지 섞여 나오는 곳도 있다고 한다. 주인의 과잉친절 혹은 엉뚱한 애교인 셈이다. 술이 들어오는데 플라스틱 물통에 소주, 막걸리, 맥주가 꽉 채워져 있다. 성선경 시인과 필자의 연속적인 건배로 벌써 빈 병은 퇴역하고 남은 술병들은 병정처럼 통 속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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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에 소주, 맥주를 집어넣고 얼음을 가득 채운다. 통술이다. 단 한 잔을 마셔도 통크게, 화통하게 마셔야하는 곳이다.


'바다를 가운데로 빙 둘러앉아서/ 이야기의 옷고름 풀어헤쳐요/ 당신은 소라의 가슴으로/ 당신은 가자미 눈짓으로/ 추억의 살점 저미어 건네 봐요/ 여기선 우리,/ 바다를 통째 건져서 마셔 봐요' (이주언 '통술집')

'오동추야 오동동 긴 이야기 한겨울 깡통시장 다녀가고/ 속살 얼비치던 여인 치맛자락 쓸듯

합포 바다 잔잔한 설렘 시심으로 다녀가고'(김일태 '통술을 비워가는 사이')

도대체 바다에서 나오는 생선과 해물이 없는 게 없을 정도로 푸짐하여, 가히 전주에 있는 전주막걸릿집보다 못함이 없었다. 오히려 바다를 밥상으로 끌어당겨서 더 풍부하고 넘실거린다.

이주언 시인의 농익은 사랑이 저미는 시는 맛과 살〔肉〕을 통해서 사랑의 행위가 이루어지고 드디어 우리와 바다가 통째로 동일화한다. 특히 소라의 가슴과 가자미 눈짓은 은근하여 추억의 살점이 몸 안으로 살며시 들어온다. 김일태 시인은 통술을 비워가는 사이 긴 이야기를 깡통에 넣고 흔들고 있었다. 그렇게 축약된 얘기는 시가 되어 벌써 시심은 합포 바다에 다다랐다.

'접시 위의 메로 구이는 결국 파국을 보여주지, 잔뜩 긴장한 속살 사이에서 툭 튀어나온 물렁물렁한 뼈, 그 뼈의 촉이 쓴 기억은 십 년이 지났다, 또 십 년이 지날 것이다, 기억을 향해 울기 시작한 물고기의 벌어진 입과 결별해 버린 저녁'(박서영 '메로 구이')

'문을 열 때 멀뚱히 쳐다보는 눈/ 접시 위에 시 한 수로 누웠다/ 마주친 눈에 바다로 가는 물길이 잡힌다'(최석균 '도다리 시인')

온갖 해산물에 메로구이까지 내놓는 마산 통술집도 시인들의 술통을 다 채우지 못했다. 성선경 시인이 내밀하게 소개한 '부광수산'에서 도다리까지 저며낸 뒤에도 긴긴 밤은 쉬 끝나지 않았다.

이튿날 숙취로 쓰린 속은 복국 한 사발 들이킨 뒤 덜컹거리는 귀경 열차에서 성 시인의 시편 '복찌개'를 읊조리며 달랬다.

'속 쓰린 소리 복, 복, 복/ 쓰린 속을 달래는 소리 복복, 복복, 복복/ 소기 풀리는 소리 복복복, 복복복'(성선경 '복찌개')

글·사진 김영탁 시인 tibet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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