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디라지 파샴 박사가 이끄는 국제 천문학 연구진은 ‘ASASSN-14li’로 명명된 거대질량 블랙홀이 인근 별을 집어삼키는 과정에서 나온 X선을 분석해 이같은 특징을 알아냈다고 9일(현지시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미국천문학회(AAS) 연례회의에서 발표했다.
‘초신성 전천 자동탐사’(ASASSN·All-Sky Automated Survey for Supernovae)로 불리는 망원경 시스템에 관측돼 이름에 ASASSN이 들어간 이 블랙홀은 은하 PGC 043234 중심부에 숨어있다. 2014년 11월, 이 블랙홀이 근처에 있던 별 하나를 잡아먹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빛 덕분에 그 존재를 처음 알 수 있었다.
빛조차 흡수한다고 알려진 블랙홀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한 천문 현상 덕분에 가능하다.
블랙홀의 표면에 해당하는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은 별보다 훨씬 크기가 작아서 온전한 상태로 별을 흡수하기 어렵다.
또한 블랙홀의 반지름 역시 매우 작으므로 블랙홀에 가까운 쪽과 먼 쪽의 중력 차이가 매우 커져 양쪽으로 잡아 당겨지는 상황이 된다. 이 때문에 블랙홀에 접근하는 별은 길쭉하게 늘어나 마치 국수처럼 가스가 늘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 가스도 바로 블랙홀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강착 원반이라는 물질의 고리에서 먼저 초고온으로 가열된 뒤 블랙홀로 조금씩 흡수된다.
이를 조석파괴사건(TDE·tidal disruption event)이라고 하며, 이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가진 플레어(Flare)가 방출되므로 과학자들은 이 빛을 측정해 블랙홀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이번 연구은 이처럼 블랙홀에서 흘러나온 빛을 관측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찬드라 X선 관측선과 닐 게렐 스위프트 우주망원경 그리고 유럽우주국(ESA)의 XMM-뉴턴 관측위성 등 여러 관측기기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자세히 분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블랙홀에서 나온 X선이 약 131초마다 강해지거나 약해지기를 반복하며 450일 넘게 계속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런 신호 패턴을 분석해 블랙홀이 얼마나 빨리 회전하는지를 추정해낼 수 있었다.
연구진이 계산한 이번 블랙홀의 회전 속도는 빛의 속도인 시속 10억8000만㎞의 약 50% 수준이었다. 이같은 속도는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측정한 소수의 거대질량 블랙홀의 회전 속도는 빛의 속도의 33%부터 84%까지 다양하다.
파샴 박사는 이번 결과가 앞으로 천문학자들이 거대질량 블랙홀의 진화를 더욱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자세한 연구 결과는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 최신호(9일자)에도 실렸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