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랜드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2011년부터 모기를 죽이는 성질을 가진 곰팡이 ‘메타히지움 핑샤엔스’(Metarhizium pingshaense) 활용 방안을 연구했다. 메타히지움 핑샤엔스는 원래부터 모기가 가까이하지 않는 곰팡이로, 질병을 옮기는 곤충을 퇴치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실제 모기를 죽이는데는 많은 양의 포자와 시간이 필요해 활용도가 낮았다. 연구팀은 이 균의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거미와 전갈의 독에서 추출한 ‘신경독’(neurotoxins) 유전자를 결합시켰다. 유전자 조작으로 신경독을 내뿜게 된 곰팡이는 자극 전달에 필요한 칼슘, 칼륨, 나트륨의 통로를 차단해 모기를 퇴치하는 효과를 보였다.
메릴랜드대학교 곤충학 교수이자 연구의 수석 저자인 레이먼드 리거는 “화학 살충제는 나트륨 통로만을 차단하지만 거미와 전갈 독소는 신경계의 칼슘과 칼륨 이온 통로를 차단한다. 기존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모기에게는 새로운 위협”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 곰팡이는 사람은 물론 꿀벌 등 다른 곤충에게는 무해하며 오직 모기에게만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실험실이 아닌 현장에서도 곰팡이가 효력을 유지하는지 검증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테스트를 이어갔다. 먼저 말라리아 창궐 지역인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180평 대지에 인공 오두막과 식물원 등 모기가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했다. 또 정확한 비교를 위해 곰팡이가 없는 구역, 곰팡이가 있는 구역, 유전자 조작 곰팡이를 퍼트린 구역으로 나눈 뒤 살충제에 강한 모기 1500마리씩을 풀어 번식 추이를 지켜봤다.
실험 결과 곰팡이가 없는 구역에서는 1세대 921마리, 2세대 1396마리의 모기가 부화했으며, 곰팡이가 있는 구역에서는 1세대 436마리, 2세대 455마리의 모기가 부화했다. 곰팡이가 있는 구역에서 모기의 번식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퇴치라고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반면 독을 뿜어내는 유전자 조작 곰팡이를 퍼트린 구역에서는 1세대 399마리, 2세대 13마리의 모기가 부화했다. 이 실험은 3차례에 걸쳐 반복됐다. 실험을 진행한 브라이언 러벳 박사는 “이 유전자 변형 곰팡이는 불과 2세대 만에 모기 개체 수를 빠르게 붕괴시켰다”면서 “45일 만에 99%나 모기가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유전자 변형 곰팡이가 벌과 같은 다른 곤충에게는 무해하며 오직 모기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실험으로 다시 한번 입증했다고 덧붙였다.
세계보건기구 WHO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 세계 87개국에서 총 2억1900만 명이 말라리아에 걸렸으며, 이 중 43만5000명에 사망에 이르렀다. 연구팀은 이번 실험의 방점이 모기의 멸종보다는 말라리아 전염을 막는 것에 찍혀 있다면서, 독을 내뿜는 유전자 조작 곰팡이를 활용한 획기적인 모기 퇴치제 개발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실험 결과는 31일(현지시간) 발행된 과학 전문 주간지 ‘사이언스’ 364호에 게재됐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