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출신 해양동물 사진작가 빈센트 르그랑은 최근 동료 장 레이니에르와 함께 피쿠섬 근해로 나가 길고 긴 촬영에 돌입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빈센트는 그물에 엉켜 버둥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지난달 26일 오후, 촬영에 나선 바다 한가운데에서 폐그물에 목이 감긴 바다거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숨을 헐떡이며 어망에 붙어있는 작은 게를 먹으려 애쓰는 바다거북을 본 빈센트와 동료는 몇 분간의 작업 끝에 다행히 구조에 성공했다. 빈센트는 “근처에는 일행으로 보이는 또다른 바다거북이 헤엄치며 폐그물에 감긴 다른 거북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구조된 바다거북은 세계자연보전연맹이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붉은바다거북’으로, 최근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멸종 위기에 처했다. 붉은바다거북의 성별은 포란 시기 온도에 결정적 영향을 받는데, 기후변화로 살인적 고온이 계속되면서 수컷 부화가 끊기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엑서터대 연구팀에 따르면 전 세계 붉은바다거북의 15% 가량이 서식하고 있는 북대서양 섬나라 카보베르데에서는 최근 태어난 갓난 거북의 85%가 암컷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팀은 오는 2100년에는 새로 태어나는 붉은바다거북의 단 0.14%만이 수컷으로 부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대가 끊길 위기에 처한 붉은바다거북이 그물에 엉켜 폐사할 뻔한 모습이 포착되자, 벨기에 현지언론은 플라스틱 쓰레기로 고통받는 해양 생태계에 대한 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달 24일 폐그물에 걸려 탈진한 붉은바다거북이 발견된 바 있다. 해경에 따르면 당시 가로 약 80cm, 세로 60cm의 붉은바다거북은 그물에 걸려 등껍질과 목 주변에 찰과상을 입고 탈진한 상태로 해안가로 떠밀려왔다.
사진=빈센트 르그랑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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