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엽충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항상 바다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자세로만 지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삼엽충이 공격받았을 때 몸을 보호하기 위해 공처럼 둥글게 몸을 말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등에만 단단한 껍데기가 있고 배는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 구조라 모든 공격에서 몸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몸을 둥글게 말아 공처럼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공처럼 몸을 말은 삼엽충 화석을 통해 증명된다.
하지만 과학자들도 삼엽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몸을 말았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아마도 현재의 아르마딜로나 쥐며느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몸을 말았을 것으로 생각되기는 하지만, 부드러운 배와 여러 개의 다리, 그리고 아가미를 어떻게 수납했는지는 알려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은 화석이 없기 때문이다. 삼엽충 역시 화석으로 남는 부분은 주로 단단한 등껍질 정도다.
미국 하버드 대학 연구팀은 박물관에서 잠자고 있던 작은 삼엽충 화석에서 이를 설명해 줄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냈다.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은 삼엽충 화석을 마이크로 CT로 파괴하지 않고 들여다본 결과 안쪽의 부드러운 복부는 물론 다리와 아가미 같은 부속지까지 잘 보존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 고대 삼엽충은 현재의 쥐며느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몸을 접어 쉽게 풀리지 않게 내부의 약점 부위를 보호했다. 밖에서 보면 정말 공격할 빈틈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몸을 접었기 때문에 비슷한 크기의 포식자에서 안전하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몸 전체를 갑옷으로 두르는 대신 등 쪽만 단단한 갑옷을 두르고 위급 상황에서 몸을 공처럼 말아서 방어하는 전략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단단한 껍데기를 만드는 비용을 줄이면서도 움직이기 편하고 몸의 표면적을 줄여 포식자의 눈을 피하는 데도 유리하다. 이런 뛰어난 방어 전략이 삼엽충의 성공 비결 중 하나였을 것이다.
흔히 자연을 약육강식의 세계로 묘사하지만, 먹이가 되는 생물이라고 해서 순순히 잡히면 멸종을 피할 수 없다. 이들 역시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승리한 생물이다.
고든 정 과학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