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은 미래에 미국에서 역사상 전례 없는 최대 규모의 내전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시빌 워’(Civil War)가 다음달 26일 미국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국내 개봉도 확정되었으나 아직 구체적인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시빌 워’는 2024년 전 세계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로 꼽힌다. 2012년 창립 이후 미국 영화계 신흥 강자로 떠올라 이제는 ‘품질보증마크’가 된 영화사 A24가 역대 최고 제작비를 쏟아부은 작품이기도 하다. 투입된 제작비는 총 7500만 달러로 한화로 1000억원에 이른다.
‘멘’, ‘서던 리치: 소멸의 땅’, ‘엑스 마키나’ 등 스릴러·SF 장르를 주로 연출해온 알렉스 가랜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2011년 제64회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던 커스틴 던스트가 종군기자 역을 맡았다.
3선 미국 대통령과 텍사스·캘리포니아 연합군
지난해 12월 공개된 예고편에 등장하는 워싱턴 전경을 고려하면 ‘시빌 워’의 배경은 사실상 가까운 미래라고 봐도 무방하다.
예고편에선 19개 주가 연방을 탈퇴했다는 소식과 함께 미국 3선 대통령(닉 오퍼먼)이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서부군 반란을 즉시 제압하겠다는 브리핑이 이어진다. 3선 대통령과 텍사스·캘리포니아의 연합. 이 두 가지가 영화 속 가장 눈에 띄는 설정이다.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중임은 가능하나 3선 이상 재임하는 것은 1951년 제22차 수정헌법에 따라 금지된다. 그러나 ‘시빌 워’에선 3선 대통령이 등장한다. 그는 민간인에 대한 드론 공격을 승인하고 FBI를 해산하는 직접적인 인물이다.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영화 속 디스토피아를 불러온 요인으로 설명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는 ‘서부군’이다. 영화에선 텍사스와 캘리포니아가 연방 정부에 맞서 동맹관계를 맺었다고 나온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는 미국을 대표하는 두 개의 큰 주(州)로서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징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미국의 양당으로서 보수와 진보 성향의 정치 행보를 보여왔다.
공화당의 상징인 레드 스테이트(Red States) 텍사스와 대표적인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s)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캘리포니아가 손을 잡는다는 것은 미국인들에겐 믿기 어려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연합군’ 설정을 두고 “한때 국가 운영 방식에 대한 이념 논쟁이던 것이 이제는 도덕적 문제가 된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정치적 양극화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로드 무비’
영화 ‘시빌 워’는 반란을 제압하겠다는 대통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으로의 진격을 결정한 서부군의 뒤를 쫓는 종군기자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베테랑 기자 리(커스틴 던스트)와 그녀의 동료 조엘(와그너 모라)과 새미(스티븐 맥킨리 헨더슨) 그리고 신입 기자 제시(케일리 스패니)까지 4명의 기자가 전쟁터로 뛰어든다.
“워싱턴에선 보이는 대로 기자를 사살하고 있어. 이건 자살행위야”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 길에 뛰어든 기자들 앞에 펼쳐진 장면은 끔찍하다. 화염에 휩싸인 워싱턴, 무장한 군인에게 공격받는 시민들, 끌려가는 시체들, 초토화된 백악관. 종군기자들은 미국 동부해안에서 샬러츠빌에 있는 서부 전선의 최전선까지의 여정을 떠나며 혼돈에 휩싸인 미국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미국 내전의 생생한 긴장감을 기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시빌 워’. 영화를 먼저 본 비평가들 사이에선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 같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예고편에는 빨간색 선글라스를 낀 군인(제시 플레먼스)과 종군기자들이 대치하는 장면이 나온다. 종군기자 중 한 명이 군인에게 “오해가 있다”며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라고 설명하자 군인은 이렇게 되묻는다.
“당신은 어떤 미국인인데?”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장면에서 군인은 기자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 한 줄의 대사가 ‘영화의 핵심이자 가장 무서운 부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분열이 심화되다 못해 내전으로 번진 ‘시빌 워’는 어떤 메시지를 품고 있을까. ‘모든 이들을 위한 자유와 정의가 함께하는 미국’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폭격으로 무너진 도시가 잔상처럼 남는다.
윤규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