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 방송,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유럽의회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본회의를 열어 이민자 배분과 난민 신청 절차를 규정한 이민·난민 협정을 가결했다.
새 협정에 따르면 EU는 국경 지역 회원국에 난민이 몰리는 상황을 고려해 다른 회원국들도 난민을 수용하는 ‘의무적 연대 메커니즘’을 도입했다. 다만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회원국은 난민 1명당 2만유로(약 2900만원)를 EU에 내거나 본국에 물품·인프라를 지원함으로써 돌려보낼 수도 있다.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EU 역외 국가에 연고가 있는 경우 제3국 인도 조치도 가능하다.
모든 난민들은 7일 이내에 얼굴과 지문 등 생체 인식을 등록해야 하고, 건강 검진과 보안 검사를 받게 된다. 지문 채취 대상 연령은 현재 14세에서 6세로 낮아진다.
또 튀니지, 모로코, 방글라데시 등 난민 승인율이 20% 미만인 국가 출신의 난민들은 최장 12주 동안 패스트트랙 심사를 거쳐 본국 송환 여부를 결정한다. 이 기간 이들은 EU 입국이 허용되지 않고 국경에 설치된 수용소에 머물게 된다. 길게는 1년 이상 걸리는 심사 기간을 줄이고 인정 가능성이 적은 난민 신청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EU 회원국들은 2015∼2016년 시리아 내전 등으로 난민이 폭증하자 기존 더블린 조약을 대체할 새 규정을 논의한 끝에 지난해 12월 새 이민·난민 협정을 타결했다. 지난해 EU 국경을 불법으로 건너온 난민은 약 38만 명으로, 2016년 이후 최고치다.
이번 협정은 회원국 최종 동의와 각국의 관련 법률 개정을 거쳐 2년 안에 시행하게 돼 있다.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안보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난민의 경우 최장 6개월간 구금되는 등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문제 제기다.
이날 방청석에서 시위대가 “이 협정은 죽이는 것이므로 반대에 투표하라!”고 큰 소리로 항의하고 종이 비행기를 던져 표결이 한때 중단되기도 했다.
국제앰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HLW), 국제구호위원회(IRC), 옥스팜 등 다수의 국제 인권단체도 이 조약이 더 큰 고통과 더욱 큰 권리 침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협정이 거의 바뀌지 않은 채 발효되더라도 폴란드를 이주 절차에서 보호할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우크라이나 피란민(약 100만명)을 수용한 만큼 난민 재분배 과정에 예외를 적용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이아르토 페테르 헝가리 외무장관은 지난해 12월 협정 타결 직후 “EU건 어디서건 우리에게 누구를 받아들일지 지시할 수 없다. 우리는 이에 대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을 거부한다”면서 “아무도 우리 의지에 반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번 새 난민 협정 추진의 이면에는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표심을 잡기 위한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탈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스웨덴 등 많은 EU 국가에서 반(反)이민 정치인들이 집권하는 가운데 이번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이민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미국 CNN 방송은 진단했다.
변화하는유럽의영국(UKICE) 수석 연구원 조엘 그로건은 “EU 주류 정당들엔 선거 전에 이러한 개혁안을 통과시켜 자신들이 이민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윤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