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른들의 미술사

아버지를 향한 소심한 반항 [으른들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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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세잔, ‘예술가의 아버지, 레베네망을 읽는 모습’, 1866, 캔버스에 유채, 198.5x119cm, 워싱턴 국립갤러리


●엄한 아버지와 소심한 아들

폴 세잔(1839-1906)이 1866년에 그린 ‘예술가의 아버지’를 단순한 초상화라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 집안의 공기, 그중에서도 말로 꺼내지 못한 부자간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눌려 있는 장면에 가깝다. 화면 속에는 성공한 은행가이자 가장이었던 루이 오귀스트 세잔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좋은 집, 안정된 삶,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을 믿는 사람이었다. 루이가 아들에게 기대한 삶은 명확했다. 안정적인 직업, 특히 법률가로서 가업을 잇는 길이었다.

실제로 세잔은 아버지의 기대에 따라 법학을 공부했지만, 결국 예술가의 길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한 진로 변경이 아니라, 가족 내 가치관의 충돌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아버지에게 의존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독립하고자 했던 세잔의 상황은 더욱 복잡했다.

1861년 세잔은 파리로 올라가 본격적으로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강하게 반대했지만 지원을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그러나 파리에서 예술가로 성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예술가로서 잘 풀리지 않았던 세잔은 1860-70년대 내내 아버지에게 의존해야 했다. 자신도 빨리 성공해서 아버지의 기대에 보답하고 싶었다. 세잔은 조급했다. 그러나 조급해할수록 일은 더 안 풀렸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더욱 서먹해져 갔다.

이러한 관계는 화면 속 인물의 배치와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아버지는 깊은 안락의자에 기대어 신문을 읽고 있으며, 안정과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졌다. 그러나 그 자세는 완전히 편안해 보이기보다는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난 균형을 드러낸다. 이는 부자 관계의 심리적 거리를 보여준다. 사랑과 존중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 바로 그 애매한 거리감이 이 작품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신문 속에 숨겨둔 메시지

특히 주목할 부분은 아버지가 읽고 있는 신문 ‘레베르망’이다. 이 신문은 당시 새로운 예술을 응원하던 매체였고, 진보적인 신문이었다. 그러니까 엄하고 보수적인 아버지가 읽었을 법한 신문은 아니었다. 세잔은 아버지의 손에 자신이 읽는 신문을 쥐여줌으로써, 직접 말하지 못한 자신의 입장을 슬쩍 전달한다.

사실 뒤를 보면 더 귀엽다. 벽에 걸린 작은 그림은 세잔의 작품이다. 세잔은 거대한 아버지 뒤에, 자기 그림을 조용히 걸어두었다. 크게 걸어두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숨기지도 않았다. 마치 세잔은 “아버지, 저는 굶어도 예술을 할 거에요”라고 단호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세잔은 엄한 아버지 면전에서 이 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이 말을 하면 불호령이 날 것이 뻔했다. 아버지와의 직접적인 충돌 대신, 소심한 세잔이 선택한 방법은 그림 속에 자신의 입장을 조용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그 소리를 들었건 안 들었건 그건 알 바 아니었다. 세잔은 선언했으니까.

●말하지 못한 또 하나의 진실

세잔은 말로 설득하지 못한 것을 그림으로 남겼고, 직접 맞서기보다 화면 속에 조용히 드러냈다. 그런데 세잔이 숨겨야 할 사실이 하나 더 늘었다. 1869년 자신의 모델이었던 오르탕스 피케와 살림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몰래 연애하고 몰래 결혼해 버린 것이다. 둘 사이에 아이도 생겼다. 세잔은 결혼한 사실도, 아이가 생긴 사실도 10년간이나 말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보란 듯이 성공해서 아버지 앞에 나서고 싶었다.

이 작품은 아버지 앞에 다가가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자신의 미래를 자신 있게 설명하지 못했던 19세기 한 취준생의 이야기였다. 세잔은 예술가로 성공하고 싶었다. 예술가로 성장한 후 아버지 앞에 떳떳하게 나서고 싶었다. 세잔은 끝내 아버지에게 크게 반항하지도, 또 완전히 순종하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초상화는 조금 쓸쓸하다. 그리고 조금 다정하기도 하다. 마주 앉아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두 사람 그리고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의 세계에 있는 두 사람. 그러나 서로를 이해해 보려 했던 부자의 이야기다. 나와 내 아버지 사이는 어떤지 되돌아볼 일이다. 아무 말 없이 같은 신문을 들춰보는 것만으로도 그날은 충분히 괜찮은 하루가 될 것 같다.

이미경 연세대 연구교수·미술사학자 bostonmura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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