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방산업체, 우크라 현지 생산·합작 확대…장기전 대비
공급 속도 높지만 러 미사일·드론 공격 표적 될 위험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의 무기 지원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완성된 무기를 보내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가 직접 미사일과 각종 무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기술을 이전하고 현지 생산 기반을 구축하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생산시설이 우크라이나 안에 들어서면 새로운 위험도 생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군수·산업시설을 미사일과 드론으로 계속 공격하는 만큼 서방 무기를 만드는 현지 공장도 장거리 타격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앤디 버넘 영국 총리는 24일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인 우크라이나를 찾아 장거리 미사일 현지 생산 지원 계획을 발표한다. 핵심은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스톰섀도·스칼프 계열 순항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유럽 미사일 업체 MBDA가 스칼프 순항미사일에 들어가는 영국산 부품의 기밀 정보를 공유하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와 프랑스에 미사일 조립·생산라인을 구축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스칼프는 영국군이 ‘스톰섀도’라는 이름으로 운용하는 것과 사실상 같은 영국·프랑스 공동개발 장거리 공대지 순항미사일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이 미사일을 러시아군 지휘소와 탄약고 등 후방 표적을 공격하는 데 사용해왔다.
현지 생산이 본격화하면 해외에서 완성품을 받아오는 것보다 공급 시간을 단축하고 장기전에 필요한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무기 보내던 유럽, 이젠 기술까지 넘긴다
유럽의 움직임은 영국에 그치지 않는다.
프랑스는 지난달 우크라이나에서 스칼프 순항미사일과 AASM 정밀유도폭탄을 면허 생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SAMP/T 방공체계에 사용하는 아스테르30 요격미사일도 우크라이나에서 면허 생산하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프랑스 대통령실은 이들 무기의 현지 생산을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해 올해 말 이전에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독일 방산업체 라인메탈은 이미 우크라이나 국영 방산기업과 합작사를 세웠고, 프랑스·독일계 방산업체 KNDS도 키이우에 현지 법인을 설치해 우크라이나 방산업계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 무기의 단순한 수입국에서 공동 개발·생산국으로 바뀌는 흐름도 뚜렷하다.
우크라이나 방산업체 파이어포인트는 탄도미사일 요격체계 ‘프레이야’를 개발하면서 유럽 업체들의 기술을 통합하고 있다. 레오나르도와 탈레스, 사브 등 12곳이 넘는 유럽 방산업체와 협력해 레이더와 탐색기, 지휘통제체계 등의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유럽 각국의 무기 재고 부담도 있다. 전쟁이 5년째 이어지면서 비축해둔 무기를 계속 꺼내 보내는 방식만으로는 우크라이나의 장기적인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우크라이나에서 직접 생산하면 수송 거리와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실전에서 확인된 문제를 무기에 빠르게 반영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드론과 전자전 등에서 축적한 경험을 유럽 방산업체가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생산 늘리면 러시아 미사일에도 더 가까워진다
문제는 공장의 위치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무기 생산시설과 군수·물류 거점을 지속해서 공격해왔다. 최근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드론 부품 생산시설 등을 장거리 무기로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일 러시아가 키이우를 겨냥해 벌인 대규모 미사일·드론 공격에서도 산업시설과 연료 저장시설, 창고 등이 피해를 입었다. FT에 따르면 당시 공격은 약 8시간 이어졌으며 주거지역뿐 아니라 산업·물류시설도 타격을 받았다.
이 때문에 유럽의 첨단 미사일과 방공무기를 만드는 시설이 우크라이나에 늘어날수록 생산시설을 어떻게 보호할지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군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시설인 만큼 러시아의 장거리 공격 위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스톰섀도·스칼프처럼 러시아군 후방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무기의 생산 확대는 러시아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안이다. 러시아는 최근 영국이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공격을 지원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경고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결국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무기를 생산하느냐뿐 아니라 생산시설을 분산하고 방공망을 갖추는 등 공장 자체를 어떻게 지키느냐도 중요해질 전망이다.
유럽이 추진하는 우크라이나 현지 생산은 장기전에서 무기 공급을 이어갈 수 있는 새로운 해법이다. 동시에 러시아의 미사일과 드론이 닿을 수 있는 전장 한복판에 군사적 가치가 높은 생산시설을 늘리는 선택이라는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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