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에 동로마제국을 중심으로 유럽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최소 1억 명의 사망을 초래했으며, 세계 최초의 대규모 전염병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이 전염병으로 지구상 인구 절반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주, 덴마크, 캐나다 등 다국적 연구팀은 1500년 전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주에서 전염병으로 숨진 사람의 치아 유골에서 DNA 샘플을 추출해 분석했으며, 그 결과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이후 흑사병을 유발한 페스트균으로부터 창궐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등장한 지 800여 년 후에야 모습을 드러낸 흑사병은 유럽에서만 4년 간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바 있다.
연구팀은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을 일으킨 페스트균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발생해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으로 전파됐으며 수 백 년의 잠복기를 가진 뒤 흑사병을 창궐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를 이끈 시드니대학의 에드워드 홀름스 교수는 “페스트균은 가장 오래된 병균체”라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염병을 유발한 페스트균의 게놈(genome)이 완벽하게 분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어 “페스트균은 쥐 등 설치류의 벼룩을 통해 인간에게 전파된 것으로 보이며, 현대에는 과거보다 나아진 위생과 환경, 의학의 발달 등으로 페스트균의 전파 및 이로 인한 사망률이 낮아졌다”고 덧붙였다.
호주의 또 다른 전문가는 “이번 연구를 통해 대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전염병이 한번 진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잠복기를 거친 뒤 다양한 경로와 인종을 통해 다시 확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학계는 이번 연구가 전염병 진화의 기원 및 확장 경로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적인 의학저널인 ‘랜싯전염병’(Lancet Infectious Diseases journal)에 실렸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