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은 일반적으로 뇌가 완전히 잠들었거나 완전히 깨어있는 것과 관련있다고 인식돼왔다. 하지만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신경과학자들은 뇌의 작은 특정 부분에서 졸리거나 잠이 들도록 유발하는, 일종의 ‘뇌 회로’를 발견했다.
이 회로는 뇌의 시상과 피질에 외부신호가 도달하는 것을 늦추는 데, 이런 메커니즘은 시상그물핵(TRN)이라는 뇌 조직이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시상그물핵은 깊은 잠의 특성인 느리게 진동하는 뇌파를 발생하는 부분이다.
또한 이런 느린 뇌파는 혼수(코마)나 전신마취 상태에도 발생하는 데 이는 각성 상태를 줄이는 것과도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
시상그물핵이 활발히 활동하면 이 느린 뇌파가 활성화돼 뇌 전체를 제어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연구진은 시상그물핵이 뇌의 서로 다른 부분에서 느린 뇌파가 발생하도록 해, 각각의 뇌 조직이 가진 낮 동안의 사건을 하나의 새 기억으로 통합시키는 것을 도울 수 있다고 여긴다.
연구를 이끈 로라 루이스 MIT 뇌와 인지과학부 박사후 연구원은 “수면 시, 특정 뇌 영역은 서로 정보를 교환할 필요가 있어 동시에 느린 뇌파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상그물핵은 잠을 못 잔 사람들이 잠에서 깨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깜빡 잠드는’ 단순한 감각을 경험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원인일 수 있다고 연구진은 말한다.
◆ 부분 제어
지금까지의 수면에 관한 연구는 뇌 전체가 느린 뇌파를 발생할 때 일어나는 수면의 ‘전역 제어’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최근 여러 연구는 잠을 못 잔 동물이 아직 깨어있는 동안 뇌 일부에서 느린 뇌파를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줘 부분적으로 각성을 제어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우리는 시상그물핵의 물리적 위치가 수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 영역이 졸음이나 각성을 부분 제어하는 것에 관한 조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루이스 연구원은 말했다.
시상그물핵은 껍질처럼 시상을 둘러싸고 있어, 시상으로 입력되는 감각 정보에 관한 ‘게이트키퍼’(문지기) 역할을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깨어있는 쥐들에서 시상그물핵을 약하게 자극하면 뇌 피질의 작은 부분에서 느린 뇌파가 발생하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이를 더 자극하면 뇌 피질 전체에서 느린 뇌파가 나타났다.
루이스 연구원은 “우리는 또한 뇌 피질에서 이런 느린 뇌파를 유도할 때 동물이 졸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시상그물핵의 미세 조정으로 특정 부분에서 느린 뇌파가 늘어나거나 줄어들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뇌가 매우 졸릴 때 일부 영역이 덜 각성하는 것을 유도하는 등 뇌를 '부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루이스 연구원은 “스스로 깨어 있으려고 노력해도 졸음이 오는 것은 뇌가 수면으로 전환하기 시작할 때 일부 영역에 그런 메커니즘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자연스러운 수면과 전신 마취
뇌가 각성을 제어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은 연구자들이 자연 수면과 더 비슷한 상태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수면제나 마취제를 설계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시상그물핵을 자극하는 것은 논렘(non-REM)수면과 같은 ‘깊은 잠’을 유발할 수 있는데, 이전 연구에서도 그 부분을 자극하는 것을 통해 렘(REM)수면을 유발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에밀리 브라운 MIT 교수는 “시상그물핵은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를 생성하는 시냅스(뇌세포 사이의 연결 부분)가 풍부하다”면서 “따라서 시상그물핵은 다량의 마취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연구진은 이전 연구에서 수면 상태의 느린 뇌파와 달리 전신마취 상태의 느린 뇌파는 제어되지 않아 이런 마취제가 뇌의 정보 교환을 손상하고 무의식을 생산하는 이유에 관한 메커니즘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이라이프’(eLIFE) 최신호(10월 13일자)에 실렸다.
사진=ⓒ포토리아(위), MIT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