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 서산 해미읍성

작성 2018.05.03 09:29 ㅣ 수정 2018.05.0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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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에 위치한 해미읍성. 대한민국 사적 제 116호로 지정된 도심 성곽을 복원한 곳이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혹자(或者)는 천 명이라 하고, 또 다른 혹자(或者)는 삼천 명을 말한다. 천주교를 믿는 그들은 해미읍성 옥사(獄舍) 앞 호야나무에 목을 매어 달려 죽었고, 작두에 목이 잘려 죽었으며, 어린 군관이 휘두른 홍두깨 방망이에 맞아 죽었고, 물 묻은 창호지를 얼굴에 붙어 죽었고, 볏단을 두 손으로 잡고 바닥으로 내리치듯 머리가 자리개 돌에 터져 죽었으며, 아녀자들은 결박당한 채로 개울 둠벙에 빠져 죽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돌무더기에 산 채로 묻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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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읍성의 진남문. 내포 지역 12개 군현을 관장하던 곳으로 수천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죽어가면서도 ‘예수 마리아’를 외치는 그들의 소리가 읍성 밖 여염집 사람들 귀에는 흡사 ‘여수 머리’라고 들리어 지금도 서산 해미읍성(海美邑城) 밖에는 여숫골이라는 지명이 있다. 조선 유일의 생매장 순교가 행해진 시간이 그대로 전해 내려오는 서산 해미읍성(海美邑城)으로 가 보자.

해미읍성(海美邑城)은 현재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도심 읍성으로, 1963년 1월 21일에 일찌감치 대한민국 사적 제116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성곽이다. 원래 이곳은 1417년(태종 17년)에 성을 짓기 시작하여 1421년(세종 3년)에 축성이 완료된 곳으로 왜구 출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의 성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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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성 내부에는 천주교 박해 당시의 군관들의 모습과 더불어 각종 조선시대 무기들도 전시해 놓았다


그러다 1651년(효종 2년)에 병마절도사가 청주로 옮겨가면서 이때부터 해미읍성은 호서 지방 및 내포 지방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읍성이 폐지되었다가 1970년대부터 복원공사가 이루어져 지금의 모습을 다시 찾게 되었다.

조선 시대 도심 내에 축조된 읍성으로는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손꼽히는 해미읍성은 총 길이가 1,800m이며 성벽의 높이는 5m에 이른다. 또한 성 바깥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깊이 2m의 해자도 축조한 타원형의 안정된 성곽으로 지금도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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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미읍성 내부의 옥사를 재현한 곳이다. 가마니로 바닥을 깔아 천주교 신자들을 가둔 곳이다


하지만, 이 해미읍성에는 천주교 박해에 관한 핏빛 가득한 역사가 깊이 새겨져 있다. 1801년에 행해진 천주교도 박해사건인 신유박해 이전부터 1839년의 기해박해, 1866년의 병인박해, 1871년 신미양요 이후 시기까지 이 곳 해미읍성을 거쳐 간 천주교 순교자는 무려 3000여명에 이른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 이후 내포 지방에서 잡혀온 여염집 신자들의 경우 제대로 된 판결도 없이 생매장을 하였는데 그 숫자가 어림잡아도 1000명을 훌쩍 넘는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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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남아 있는 회화나무. 이 곳에 쇠줄을 걸어 신자들의 목을 매어 달아 죽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군관들은 그들로부터 뺏은 십자가와 묵주를 읍성 서문 난간 문턱에 올려놓고 이를 밟으면 살려 준다는 조롱 섞인 배교(背敎)를 강요했지만, 끝끝내 수천 명에 이르는 신자들은 죽음을 택했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이곳에는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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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해미읍성에는 읍성축제가 열린다. 공연을 마치고 잠시 쉬고 있는 동네 주민들의 모습


2014년 8월 17일 교황 프란체스코가 해미 순교터를 방문한 이후 해미읍성 주변지역은 천주교를 믿는 신자들뿐만 아니라 진정한 삶과 죽음의 의미, 종교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도 뜻깊은 공간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해미읍성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한국 로마 카톨릭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교터 중의 하나다.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의미를 전해주는 공간.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나들이, 천주교 신자라면 더더욱

3. 가는 방법은?

- 충남 서산시 부춘공원2로 11(읍내동)

4. 감탄하는 점은?

-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성곽의 돌무더기, 아직도 남아 있는 그 시절의 회화나무.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늘 한산한 편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순교의 흔적이 남은 회화나무, 옥사, 진남문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산수파김치장어’, ‘원조장어마을’, 백반집 ‘진국집’,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haemifest.com/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추사고택, 한용운 생가터, 장영실 과학관, 수덕사

10. 총평 및 당부사항

- 한국 유일의 생매장 순교터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1800년대 조선 후기 선조들의 고뇌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곳이다. 갈 곳 잃은 조선의 운명에서 살고자 몸부림쳤던 조상들의 피울음이 울려 퍼지는 곳.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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