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억4,100 - 6억3,500만 년 전 고대 지구의 바다 밑에는 현재는 상상하기 어려운 기묘한 생물이 살았다. 에디아카라 생물군이라고 불리는 이 생물의 상당수는 현생 생물군과 연관이 없고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역시 분명치 않은 생물이다.
이 가운데 깊은 바닷속에 살았던 레인지오모프(rangeomorphs)는 최대 2m까지 자랐던 대형 생물로 양치 물과 비슷한 외형을 지녔지만, 식물이 아닌 점은 확실하다. 광합성이 불가능한 어둡고 깊은 바다에 살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시 바닷물에 풍부한 유기물을 걸러 먹는 여과 섭식자로 추정된다.
과학자들은 레인지오모프가 현생 동물군과 연관이 없는 멸종 그룹이라고 보고 있지만, 거대한 크기로 자란 최초의 생물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다세포 생물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큰 크기로 자란 배경을 이해하면 다세포 생물의 진화와 다양화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세포 생물이 왜 탄생했고 지금처럼 크고 다양하게 진화했는지는 과학이 풀어야할 중요한 질문 중 하나다.
레인지오모프의 거대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가설은 더 많은 먹이를 먹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바닷물 속의 유기물을 걸러서 먹는 특징상 더 크게 자라면 더 많은 유기물을 걸러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케임브리지 대학의 에밀리 미첼 박사와 그녀의 동료들은 캐나다 뉴펀들랜드에서 발굴한 레인지오모프 군집 화석을 분석해 이 가설에 의문을 제기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당시 바다에는 대형 다세포 동물이 거의 없고 유기물은 풍부해 먹을 것을 두고 경쟁이 지금처럼 치열하지 않았다. 더구나 단지 여과를 위해서라면 위로 높이 자란 구조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라면 키가 클수록 햇빛을 더 많이 받지만, 여과 섭식을 하는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이들이 식물처럼 위로 높이 자란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팀은 번식이 그 이유라는 가설을 내놨다.
레인지오모프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자손을 퍼트리는 방식 역시 알이나 포자를 물의 흐름에 따라 흘려보내는 방식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키가 큰 쪽이 더 넓은 범위에 자손을 남길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경쟁적으로 더 커지게 되었고 결국 2m까지 크게 자라났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가설 역시 검증이 필요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키가 큰 레인지오모프가 더 많은 자손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매우 높이 자랐다는 점이다. 이것이 자손을 많이 퍼트리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높은 위치에 먹이가 더 많기 때문이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미 이 아득한 과거부터 후손을 남기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지금 지구 생태계는 그 결과물인 것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