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랜 시간 인적은 끊겼지만 놀랍게도 동물들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이번에 미국 뉴욕대학 연구팀은 체르노빌 지역에서 토양 샘플, 썩은 과일 등에서 지렁이 모양의 아주 작은 선형동물인 20종의 선충을 수집해 분석했다. 선충은 간단한 유전적 구성을 가지고 있으며 빠르게 번식해 척추동물이 한 세대를 거치는 동안 수십 세대의 진화를 할 수 있다.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됐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선충의 경우 게놈이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 연구를 이끈 매튜 록맨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체르노빌이 안전한 지역이 됐다는 의미는 아니다”면서 “일부 선충류의 경우 정말 회복력이 있고 극한의 조건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연구팀은 이번 결과를 통해 손상된 DNA의 복구가 개인마다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체르노빌이 남긴 역설적인 과학 유산은 이뿐 만이 아니다. 앞서 지난 2022년 스페인 오비에도대 등 공동연구팀은 체르노빌 출입금지 구역 내에 서식하는 청개구리를 조사한 결과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논문에 따르면 출입금지 구역 등 방사능이 강한 곳에 사는 청개구리들이 그렇지 않은 곳에 사는 청개구리에 비해 피부색이 검게 짙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체르노빌 지역에 사는 늑대는 일반 늑대에 비해 면역체계가 크게 변화한 것으로 나타나 암과 싸우는 능력이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와 체르노빌 인근에 서식하는 제비의 날개에서 발견된 박테리아는 감마 방사선에 저항하는 능력이 더 강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박종익 기자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