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는 24일(현지시간) 자체 선전매체인 아마크 통신의 텔레그램 계정을 통해 90초 분량의 테러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독점 영상: 기독교인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공격’이라는 아랍어 자막이 적혔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지난 22일 모스크바 외곽의 크로커스 시티홀 앞에서 테러범 최소 6명 중 한 명의 보디캠에 찍힌 해당 영상에는 소총을 든 무장 괴한들이 공연장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한 테러범이 “기관총을 가져와라. 그들을 죽이고 자비를 베풀지 마라”고 말하자, 또 다른 테러범은 “그들은 신의 뜻에 따라 패배할 것”이라면서 “신은 위대하다”고 소리친다.
영상은 테러범 한 명이 공연장 입구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최소 10발의 총격을 가하는 장면도 보여준다. 그러자 다른 테러범이 바닥에 쓰러져 누워 있는 부상자들의 목을 흉기로 베어 확인 사살까지 한다.
이번 테러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20년 만에 러시아에서 자행한 가장 치명적인 공격으로, 러시아 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희생자가 계속 늘어 137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가 애도의 날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모스크바 내 상점과 기업, 식당은 일제히 문을 닫았다. 푸틴 대통령도 모스크바 외곽 예배당을 찾아 희생자를 기리는 촛불을 켰다.
러시아 당국은 전날 모스크바 남서쪽에서 차량을 타고 탈출을 시도하던 테러 용의자 4명을 체포하고 다른 2명은 교전 중 사살됐다고 밝혔다. 붙잡힌 테러 용의자 4명은 모두 타지키스탄 국적이며, 이들이 강압적인 상황에서 테러를 자백하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연계된 텔레그램 채널 그레이 존은 테러범 한 명이 고문을 당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유했다. 사진 속 남성은 두 팔을 등 뒤로 묶이고 바닥에 옆으로 누운 채 바지가 무릎까지 내려져 있다. 텔레그래프는 러시아군의 야전전화기에 연결된 전선이 이 남성의 고환에 부착돼 있으며, 그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다고 전했다.
그레이 존은 이를 ‘표준 심문’ 기법이라고 설명하면서 러시아에서 체포된 타지키스탄 출신 테러범들 중 한 명이 전기 장치와 연결돼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옛소련의 공화국이었던 타지키스탄의 에모말리 라몬 대통령은 이날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테러범들은 국적도, 고국도, 종교도 없다”고 말했다. 전날 타지키스탄 외무부는 자국민이 테러에 연루됐다는 보도가 가짜라고 말하기도 했다.
타지키스탄인은 러시아 내 이주민 노동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러시아 내 인권 운동가들에 따르면 러시아에 거주하는 중앙아시아인을 대상으로 경찰이 조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크렘린궁과 선전가들은 IS가 테러를 저질렀다고 자처하는데도 배후에 우크라이나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는 테러 사건과 어떤 연결고리도 없다고 부인했으며 미국도 같은 입장이다. 미국은 이달 초 이미 IS의 러시아 테러 계획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러시아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서방 분석가들은 크렘린궁이 공격의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전가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길 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날도 러시아 유력지들은 이번 테러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연관성을 계속해서 보도했다.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인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는 헤드라인에 “크로커스 테러리스트 심문 영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길은 우크라이나로 이어진다”고 썼다.
윤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