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군이 동북부 국경 인근의 대도시인 하르키우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려는 공습을 이어갔다”면서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240m 높이의 방송 송신탑이 파괴됐다”고 말했다.
공개된 영상은 폭격을 받은 거대한 송신탑의 기둥이 두 동강나며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우크라이나 특수통신국은 해당 송신탑이 러시아군의 공대지 순항미사일 Kh-59의 공격을 받았으며, 이 공격으로 텔레비전 방송 송출이 일시 중단됐다고 밝혔다. 송신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피소로 피해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송신탑의 파편이 떨어지면서 주변 건물들도 큰 손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언론의 자유와 표현을 위한 비영리 단체인 ‘언론 및 미디어 자유를 위한 유럽센터’(ECPMF)는 “러시아가 하르키우의 텔레비전 송신탑을 파괴한 것은 언론의 자유와 정보 접근권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하고 “우리는 미디어 인프라에 대한 이러한 공격 행위를 규탄하며, 전쟁 중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언론인의 편에 설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가 하르키우의 텔레비전 송신탑을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개전 직후인 2022년 3월 6일 당시에도 하르키우에서 러시아군이 전투기를 이용해 송신탑 인근에 폭탄을 투하했지만, 해당 전투기는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격투됐다.
당시 폭탄을 투하한 러시아군 조종사는 전투기에서 탈출한 뒤 우크라이나 방위군에 의해 구금됐다가, 1년 후 우크라이나 법원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국가의 추가 군사지원이 이뤄지기 전 전쟁에서 확고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맹공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제2도시인 하르키우는 러시아 국경에서 불과 30㎞ 떨어져 있으며, 최근 러시아군은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해 이 도시를 집중 공격하고 있다. 러시아 내에서는 안보를 위해 국경 인근 우크라이나 지역에 ‘완충 지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만큼, 하르키우를 러시아의 완충 지대 구축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더불어 러시아는 서방 국가의 지원 전 동부 도네츠크주(州) 지상전에서도 요충지를 점령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 투입도 결정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날 러시아군이 도네츠크주 핵심 교두보인 차시우야르에 최대 2만 5000명의 병력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차시우야르는 러시아군이 지난해 5월 점령한 이 지역 주요 도시 바흐무트에서 서쪽으로 5~10㎞ 떨어진 고지대다. 해당 지역이 러시아에 점령될 경우, 우크라이나군이 지키고 있는 도네츠크주 서부 지역의 방어도 어려워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자국의 2차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인 5월 9일까지 차시우야르를 점령하려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군 측은 “현재 이 지역 주변 상황이 어렵지만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미국, 우크라 지원 예산안 통과…EU는 합의 실패한편, 미 하원은 지난 20일 608억 달러(한화 약 84조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원에서 예산안이 통과되면, 우크라이나는 자국 방공망 구축에 큰 동력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22일 룩셈부르크에서 외교·국방장관 회의를 열고 방공시스템인 패트리엇 미사일 지원을 논의했지만,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이날 회의가 끝난 뒤 “패트리엇은 브뤼셀(유럽연합 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각국 수도에 있다. 결정은 그들에게 달린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패트리엇 지원에 대한 회원국들의 이견이 있음을 인정했다.
송현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