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재’로 남은 뭉크의 슬픈 사랑 [으른들의 미술사]

작성 2024.04.25 09:04 ㅣ 수정 2024.04.2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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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크, ‘재 I’, 1896, 석판화, 29.6x43cm, 개인소장.
전나무가 빽빽한 숲속에 두 남녀가 있다. 화면 아래 남성이 고개 숙이고 여성은 이제 막 옷을 입으려는 참이다. 붉은색 옷을 입은 여성은 옷을 추스르고 있고 남성은 머리를 감싸 깊은 후회를 하는 중이다.

뭉크의 사랑 작품에는 사랑의 환희와 수치심이라는 서로 다른 감정이 공존한다. 뭉크는 불타오르는 사랑이 재가 된 순간을 그렸다.

뭉크는 밀리와 처음 사랑을 나눴던 기억을 ‘굴욕감, 엄청난 피로와 슬픔’으로 기록해 두었다. 따라서 화면 아래 머리를 감싸고 큰 슬픔에 빠진 남자는 뭉크 자신이었다.

어둠, 숲속, 그리고 달빛 아래

뭉크와 밀리와의 사랑은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관계였다. 따라서 뭉크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어둠, 숲속, 달빛 아래였다. ‘재’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 역시 숲속에서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축복받지 못한 사랑을 시작한 뭉크는 죄의식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반면 우뚝 솟은 여성의 모습은 남성을 지배하고도 남는다. 밀리는 뭉크보다 세 살 연상이었으며, 돈도 더 많았고, 경험도 더 많았다. 밀리가 사랑의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여성은 능동적이고 남성은 수동적이다. ‘재’(Ashes)는 바로 뭉크와 밀리의 힘의 역학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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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크, ‘재 II’, 석판화, 45.4x59.9cm, 개인소장.
강한 여성과 나약한 남성

머리를 감싸고 있는 뭉크와 밀리의 자세는 연극적이다. 여성은 강하고 남성은 나약하다. 이는 전통적인 성 역할을 바꾼 것이다. 세기말의 데카당 감성은 팜므 파탈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는 여성이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끝내 파멸시킨다는 의미다. 클림트의 ‘유디트’는 대표적인 팜므 파탈 도상이다.

밀리와의 사랑을 끝낸 후 뭉크에게 두려움과 죄책감이 몰려왔다. 때문에 이 작품에 남는 것은 공허함, 나약함, 두려움, 욕망, 수치심, 절망이다. 뭉크는 밀리와 사랑에 빠진 후 원인 모를 슬픔에 빠졌다. 뭉크에게 남은 것은 깊은 후회뿐이다. 어느덧 후회는 두려움으로, 공포로 변했다.

두 남녀를 그린 ‘재’의 원래 제목은 ‘타락 이후’였다. 아픈 상처만을 남긴 밀리와의 사랑 이야기는 입안에 재를 한가득 머금은 듯 뒷맛이 썼다.

<편집자주> 서울신문사는 올해 창간 12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에드바르 뭉크 전시 ‘비욘드 더 스크림’(Beyond The Scream)을 오는 5월 22일부터 9월 1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올해는 뭉크가 사망한 지 80주기를 맞이하는 해다.

이미경 연세대 연구교수·미술사학자 bostonmura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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