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는 뭉크의 두번째 연인이었던 작가 다그니 율(Dagny Juel,1867~1901)을 모델로 그린 그림이다.
첫번째 연인이었던 유부녀 밀리와의 뼈 아픈 첫 사랑의 경험을 한 뭉크는 1892년 독일 베를린의 ‘검은 새끼 돼지’라는 술집을 드나들며 다양한 예술가들과 매일 밤 모임을 하게 된다. 이 곳에서 뭉크는 우연히 먼 친척이자 어릴적 친구인 다그니를 만난다.
아름다운 외모와 우아한 매너를 가진 그녀는 모임에 나온 모든 남성들의 뮤즈였다. 뭉크 역시 다그니에게 마음을 품었고, 다그니와 자주 만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다그니는 모임에 나온 뭉크의 친구이자 폴란드 작가인 프지비셰프스키(Przybyszewski)와 결혼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뭉크는 분노와 질투심에 사로잡히게 되고,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당시 이 같은 자신의 감정을 화폭에 담은 그림이 마돈나이다.
뭉크가 마돈나를 통해 표현한 성과 속의 문제는 1901년 다그니의 죽음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 다그니는 남편인 프지비셰프스키에게 버림받고, 34살의 나이에 그녀를 후원했던 에머릭이라는 남자에게 살해를 당한다. 다그니를 숭배하고 집착했던 에머릭은 다그니를 총으로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다그니가 자유연애를 지향하던 상류층의 폐혜의 상징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리자 뭉크는 다그니를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뭉크는 마돈나의 모델이었던 다그니의 죽음을 욕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다그니가 자신의 뮤즈였다고 밝히는 추모 글을 쓰기도 했다.
뭉크는 마돈나를 5개의 유화 버전 외에도 1895년부터 1902년까지 동판화와 흑백 석판화, 다색 판화 등 여러점의 판화를 제작했다. 뭉크에게 판화는 유화의 복사본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물이었다. 석판화는 배아와 정자를 모티브로 한 프레임을 그려 넣는 등 유화 버전과는 다르게 구성했다.
이 도슨트는 “관능과 이지적, 공존하기 힘든 다그니의 양가적 매력을 마돈나에 빗대어 절대 하나로 연결할 수 없는 성스러움과 죽음으로 표현하고 있다”면서 “마돈나의 모호함과 복잡성은 서로 다른 근본적인 개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바르 뭉크 특별전 ‘비욘드 더 스크림’에서는 석판화와 채색 판화 등 서로 다른 느낌의 마돈나 5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회는 지난달 22일 개막했으며, 오는 9월 19일까지 열린다.
조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