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스오브인디아 등 현지 언론의 1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일 서벵골주(州) 주도 콜카타에 있는 한 국립병원에서 일하던 31세 여성 수련의가 저녁 식사 후 휴식을 위해 세미나실에 들렀다가 희생됐다.
희생자는 다음 날 아침 동료들에 의해 세미나실 연단에서 옷이 반쯤 벗겨진 채로 발견됐다. 몸 곳곳에서 광범위한 상처가 발견됐으며 특히 생식기 부위에서 고문에 가까운 부상이 확인됐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로 체포된 해당 병원의 직원은 환자를 돌보는 자원봉사자로 알려졌다.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병동 출입에 제한이 없었던 탓에 상당수의 야근자들이 있던 병원에서 버젓이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다.
희생자가 늦은 밤 세미나실에서 휴식을 취한 이유
BBC에 따르면 인도 의사 중 여성은 30%를 차지하며 간호 직원의 경우 전체의 80%가 여성이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콜카타의 해당 국립 병원은 매일 3500명 이상의 환자가 진료를 받으며, 수련의들은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지정된 휴게실이 따로 없어 세미나실에서 휴식을 취해왔다.
콜카타 지역의 또 다른 오래된 국립 병원에서 일하는 마두파르나 난디는 BBC에 “병원은 언제나 우리의 첫 번째 집이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집이 아닌 병원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병원이 이렇게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어 “내가 산부인과 레지던트로 있는 병원에는 여성 의사 전용 휴게실이나 별도의 화장실도 없다”면서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날에는 병동에 비어있는 환자 침대에서 자거나, 침대와 세면대가 있는 좁은 대기실에서 잠을 자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병원에서 겪었던 끔찍한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난다는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절정에 달했을 때, 몇몇 남성들이 내가 쉬고 있는 방으로 난입해 나를 만지며 깨웠다. 그들은 ‘일어나서 우리 환자를 좀 봐달라’고 요구했다”면서 “나는 당시에도 큰 충격을 받았지만, 병원에서 의사가 강간·살해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수도 뉴델리의 또 다른 병원 간호사는 “우리는 2012년 집단 성폭행 및 살해사건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면서 “이제 여성들은 직장에서조차 안전하지 않다”고 개탄했다.
또 다른 여성 의사는 “밤새 병원에서 일해야 할 때에는 역시 의사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주위에서는 이를 비웃기도 했지만, 내가 두려웠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도 당국 “파업에 참여한 의사들에 법적 조치 없을 것”충격적인 사건이 알려진 뒤 인도수련의협회연합(FORDA) 소속 회원들은 12일 서벵골주 등 최소 5개주에서 일부 업무를 무기한 중단하는 등 파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당국에 신속한 사건 조사와 책임자 처벌, 국립병원 보안규정 신설 등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해당 파업에 참여한 의사들은 약 30만 명에 달했다.
13일 밤 연방 보건부 장관이 이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FORDA의 공식 파업은 철회됐지만, 델리 및 주요 지역들의 병원에서는 14일에도 파업이 계속됐다.
정부는 콜카타를 포함해 인도 전역에서 파업에 참여한 의사에 대해 어떤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에는 의료 종사자를 보호할만한 엄격한 법률 없어”인도에서 의료진이 환자 또는 환자의 가족에게 폭행 등의 피해를 입은 사례는 도 있다.
지난해에는 케랄라의 한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23세 의사가 술에 취한 환자에게 수술용 가위로 찔려 목숨을 잃었다.
서벵골에 있는 한 공중 보건소에서 일했던 미트라라는 여성 의사는 “낡은 호스텔을 의사들의 휴게실 겸 숙직실로 사용했는데, 해가 지면 남성들이 호스텔 주위에 모여 음란한 말을 건넸다. 신체 접촉을 위해 혈압을 체크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고, 깨진 욕실 창문으로 여성 의료진이 샤워하는 모습을 들여다보기도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BBC는 “현재 인도에는 의료 종사자를 보호할만한 엄격한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25개 주에서 의료종사자에 대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몇 가지 법이 있지만, 이와 관련한 유죄 판결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전했다.
송현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