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지친 일상 속, 창덕궁이 전하는 고요한 위로 [여니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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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 달빛기행은 돈화문(왼쪽)에서 집결하면서 시작된다. 오른쪽 사진은 조선 때 공식 국가행사를 치르던 인정전.


우리는 도심의 소음 속에서 산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음, 그리고 쉴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발걸음 사이에서 우리는 멈춰 설 틈조차 찾지 못한 채 고요함을 잃고 있다. 화려한 빛에 휘감긴 도시에서도 고즈넉함을 간직한 창덕궁의 달빛기행은 현대인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돈화문에서 시작되는 달빛기행은 청사초롱의 은은한 불빛과 함께 조선의 시간 속으로 걸어가는 여행이다. 금천교를 건너며 느껴지는 정적, 인정전 앞에 서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순간, 지금의 번잡한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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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용지와 부용정에서는 정조가 야간 산책을 하는 모습을 재연한다.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달빛 춤추는 부용지, 유려하게 뻗은 전통의 선부용지 연못가에 다다랐을 때, 정자와 연못 위로 드리운 달빛은 잔잔한 물결과 함께 흔들린다. 부드러운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나뭇잎 사이로 별빛이 어른거리는 풍경은 그 자체로 평온하다. 이곳이 단순한 옛 건축물이 아니라, 선조들이 자연 속에서 쉼을 누리며 사색에 잠기던 공간임을 느끼게 된다.

연못가에서 머무는 시간은 짧았지만, 그 고요한 순간 속에서 우리는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물결 하나하나에 반사되는 달빛은 우리가 얼마나 서두르며 살아왔는지를 묻는 듯하다.

숲길을 걷다 보면 상량정에서 들려오는 대금의 선율이 밤공기를 가로지른다. 깊고 은은한 소리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조선의 시간과 지금을 이어주는 다리처럼 느껴진다. 대금 소리에 이어지는 타령 공연과 함께, 관람객들은 잠시 그 옛 시간에 머문다.

이어지는 한과 체험은 감미로운 여유를 더한다. 조용히 앉아 전통 한과의 달콤함을 음미하며 우리는 문득 선조들의 삶의 방식을 떠올리게 된다. 단순한 먹거리 하나에도 자연의 조화와 고요함을 담아내던 그들의 지혜는, 지금의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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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량정(낙선재 후원에 있는 육각형 누각)에서 듣는 대금연주.


후원 숲길이 전하는 위로…쉼의 미학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진 후원 숲길을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나무 사이로 보이는 부용지가 다시 한번 발길을 붙잡는다. 그 순간,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빠르게 걷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천천히 걷는 이 길은 단순히 발걸음을 옮기는 여정이 아니라, 우리가 놓쳐왔던 여유를 되찾는 시간이다.

별빛을 바라보고, 밤바람을 느끼며 잠시 멈춰 서 있는 동안, 창덕궁의 숲은 말없이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 고요 속에서 관람객들은 각자 자신만의 여유를 발견한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단순히 궁궐을 관람하는 체험이 아니다. 달빛 아래 잔잔히 물결치는 연못, 고요한 밤을 수놓는 대금의 선율, 청사초롱을 들고 숲길을 걷는 이 여정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쉼의 미학’을 되찾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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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도심 한가운데서 어둠과 고요를 품은 창덕궁은 잠시 멈춰 선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쉼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가끔은 그저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고요 속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창덕궁의 고요한 밤은 우리에게 그 작은 여유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가르쳐준다.

이 밤, 창덕궁은 조용히 속삭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이 순간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그 속삭임은 각박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박정연 칼럼니스트 yeonii01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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