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미국의 지원이 끊긴 우크라이나에 기다린 듯이 공세를 퍼붓고 있다.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도 커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유발했다는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당국자를 인용해 러시아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최소 25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전날 밤 도네츠크주 도브로필리아 마을에는 탄도미사일 두 발과 샤헤드 자폭 드론 다수가 날아들어 5층 아파트 등 주거 건물 9채와 쇼핑센터 등이 파괴됐다.
이에 따라 구조대원 한 명을 포함해 11명이 숨지고 어린이 7명을 포함해 50여명이 부상했다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날 저녁 연설에서 밝혔다.
그는 앞서 텔레그램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구조대를 의도적으로 표적으로 삼았다고 비난하고, “이런 공격은 러시아의 목표가 변함없음을 보여준다”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 이틀간 또 다른 공격으로 9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당국자는 밝혔다.
하르키우와 오데사주를 포함한 다른 지역에도 주택과 에너지 기반 시설을 겨냥한 러시아 공습이 이어졌다.
이날 새벽에는 하르키우 보호두히우 지역 내 육가공 공장에 드론 한 대가 충돌해 3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했다고 지역 책임자 올레흐 시녜후보우가 밝혔다.
최근 러시아는 일주일 새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말 젤렌스키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충돌한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하나둘 끊고 있는 상황을 악용한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회담이 파국으로 끝난 이후 무기와 정보지원을 끊었고 상업용 위성사진 접근도 차단했다.
우크라이나의 방어 전선은 그만큼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조치가 러시아의 공세 강화를 부추겼다는 비판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친러시아적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7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의 지원 중단을 전쟁에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가 누구나 할 법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라도 그 위치에 있으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 몇시간 뒤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습을 퍼부었다.
유럽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와 함께 더는 미국에 안보를 의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엑스(옛 트위터)에 “이건 누군가가 야만인을 달래면 일어나는 일이다. 더 많은 폭탄, 더 많은 공격,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다”면서 “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비극적인 밤”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행위가 러시아의 공격에 빌미가 됐다고 지적한 셈이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러시아의 가차 없는 미사일 공격은 푸틴 대통령이 평화에는 관심이 없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강화하지 않으면 더 많은 민간인이 피해를 볼 수 있다”이라고 우려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는 법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이 전쟁을 허용하는 동안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파괴하고 차지할 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러시아의 공습을 사실대로 전하고 비난하는 동맹국들에 감사를 표했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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