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대러 직접 수출통관 기록 없어”…우크라 “한국 항구 선적·러시아 운송 자체 자료 보유”
‘직접 수출’과 ‘항구 선적 뒤 러시아행’은 별개…제재 위반 여부도 따로 따져야
한국 항구에서 실린 석유제품이 러시아로 운송됐다는 논란을 놓고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설명이 엇갈리고 있다. 한국 정부는 러시아로 석유제품을 직접 수출통관한 기록이 없다고 밝혔지만, 우크라이나는 제재 대상 선박을 통한 운송 활동을 뒷받침하는 자체 자료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두 주장은 언뜻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쪽은 한국의 공식 수출통관 기록을, 다른 쪽은 한국 항구에서 물건을 싣고 러시아로 이동한 선박의 운송 활동을 말하고 있어 반드시 같은 사실을 놓고 다투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매체 흐로마드스케에 따르면, 헤오르히 티히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언론에서 본 사실 외에도 이런 활동에 관한 자체 자료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비공개 외교 소통 과정에서도 한국 측이 관련 사안을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한국 정부에 우려를 전달하고 어떤 활동이 이뤄졌는지 설명도 요구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발언만으로 한국 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불법 수출이나 제재 위반을 인정했다고 볼 수는 없다. 티히 대변인도 한국 측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인정했는지, 우크라이나가 확보했다는 자료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앞서 청와대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관계자가 한국이 러시아의 연료난 완화에 도움을 줬다고 공개 비판하자 “사실과 다르고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韓 “직접 수출통관 기록 없다”…항구 선적은 별개
논란의 출발점은 영국 일간 가디언의 선박 추적 보도다. 가디언은 지난 7~8월 유조선 7척이 울산과 여수 등 한국 항구에서 석유제품 17만 6000t 이상을 싣고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14차례 운항했다고 전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경유였으며 일부 선박은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 대상이었다.
한국 정부는 8일 외교부·산업통상부·관세청 공동 참고자료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내놨다. 정부는 가디언이 언급한 상업용 경유와 항공유 등 석유 정제제품 자체는 한국의 대러 수출통제 품목이 아니며, 한국 항구에서 이를 선적했다는 사실만으로 국내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무역통계상 경유·항공유·자동차용 휘발유 등이 한국에서 러시아로 직접 수출통관된 기록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해당 석유제품이 한국산인지 여부도 현재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따라서 ‘한국 항구에서 선적한 석유제품이 러시아에 도착했다’는 것과 ‘한국 업체가 러시아를 최종 목적지로 신고해 직접 수출했다’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선박이 제3국을 목적지로 신고한 뒤 러시아로 향했다는 의혹도 남아 있다. 정부는 신고 목적지와 실제 운항지가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허위 신고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국내법 위반 여부를 확인해 문제가 드러나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자체 자료’가 입증하는 건 어디까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연료가 실제로 공급된 점에 주목한다. 블라디슬라우 블라시우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재 담당 보좌관은 한국 항구를 거친 석유제품이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타격으로 발생한 러시아의 연료 부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거래가 러시아에 경제적·군사적으로 도움이 됐는지와 한국이 제재를 위반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흐로마드스케 역시 제재 대상 선박이 한국 항구에서 러시아로 연료를 운반했다고 전하면서 해당 거래가 한국 법률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전략물자를 원칙적으로 러시아에 수출하지 않고 있으며, 전략물자가 아니더라도 군사 전용 가능성이 있는 1402개 품목을 별도 통제하고 있다. 상업용 경유와 항공유 등은 현재 이 목록에 포함되지 않는다.
결국 이번 공방의 다음 확인 지점은 우크라이나가 말한 ‘자체 자료’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이 자료가 단순히 선박의 항로와 화물 이동을 확인하는 수준인지, 아니면 판매자와 최종 구매자·거래 구조까지 보여주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양국은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 공개 문제로 이미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다. 티히 대변인은 이 문제와 관련한 비공개 협의도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석유제품 논란에서는 감정적인 외교 공방과 별개로 누가 무엇을 판매했고, 어떤 통관 절차를 거쳤으며, 국내법이나 제재 규정을 실제로 위반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공개된 사실만으로는 한국 정부 차원의 대러 석유제품 지원이나 제재 위반을 단정하기 어렵다. 반대로 한국 항구에서 실린 석유제품이 러시아로 운송됐다는 선박 이동 기록 자체를 정부가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 ‘직접 수출은 없었다’는 한국과 ‘러시아행 운송 자료가 있다’는 우크라이나의 주장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 이유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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