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화탄소는 최근 지구 온난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사실 지구 기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체입니다.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탄 같은 온실가스가 없다면 지구의 온도는 크게 낮아져서 얼음 행성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그 농도가 400ppm 정도로 빠르게 상승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죠. 기후 과학자들이 그 위험성을 계속해서 경고하는 동안 화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역시 화석 연료 의존도를 줄이는 것인데, 문제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가 연료로만 사용되는 게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물건이 석유화학 공정으로 제조됩니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플라스틱은 그 대표적인 물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제조할 수 있으면서 가볍고 튼튼한 플라스틱의 발명은 화학의 가장 큰 공로로 불리지만, 동시에 썩지 않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현대 사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금속 소재와는 달리 플라스틱은 녹여서 쉽게 재활용하기도 어렵고 바다와 토양에 버려지는 경우 썩지 않고 장기간 보존되면서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친환경적이고 탄소 중립적인 대체 소재 개발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영국 배스대학의 지속 가능한 화학 기술 센터(CSCT, Center for Sustainable Chemical Technologies)의 연구팀은 이산화탄소와 설탕(sugar)을 이용해서 다양한 폴리머(polymer) 소재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들이 개발한 새로운 공정은 매우 흔한 소재인 설탕과 이산화탄소를 사용해서 원료비가 저렴할 뿐 아니라 현재 널리 사용되는 소재인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폴리카보네이트는 투명하게 제작할 수 있어 음료수 용기나 DVD, 휴대폰 소재나 코팅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개발한 폴리머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를 뛰어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제조 공정에서 포스겐(Phosgene) 같은 독성 물질을 사용하지 않아서 제조 공정이 안전하며 BPA 같은 환경 호르몬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사용과정도 안전합니다. 특히 이 폴리머는 DNA의 구성물질인 티미딘(thymidine)과 유사해 생체적합성이 높다고 합니다. 따라서 의료용으로 응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입니다. 물론 안전성 부분은 더 검증이 필요하지만, 실제로 그렇다면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보다 훨씬 쓸모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폴리머가 토양에 있는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플라스틱 폐기물보다 더 안전할 뿐 아니라 처리하는 방법도 더 간단합니다. 동시에 적절한 효소로 처리할 수 있다면 다시 이산화탄소와 당분으로 분해해서 원료를 재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도 썩는 플라스틱은 나와 있지만, 연구팀의 주장대로라면 새로운 폴리머 소재는 기존의 플라스틱을 넘어서는 가능성이 있으면서 동시에 제조 공정에 석유가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히려 제조 공정에서 원료로 이산화탄소가 들어가므로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료가 저렴하다고 해도 공정이 저렴하고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으면 상업화는 불가능합니다. 동시에 이미 나와 있는 플라스틱 소재와 경쟁할 만한 성능과 내구성도 갖춰야 합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석유화학은 지금의 산업 문명을 가능하게 만든 현대의 연금술이지만, 환경과 인체에 해로운 여러 가지 물질을 만들어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산업혁명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며 자원 고갈 걱정이 없는 새로운 화학 물질을 만드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앞으로 화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