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미국 의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불임전문의로 유명한 도널드 클라인(80) 박사가 환자에게 자신의 정자를 몰래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 클라인 박사는 1970년~1980년대까지 불임환자에게 자신의 정자를 다른 기증자 것이라고 속여 인공수정 시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인디애나의 주법상 처벌할 조항이 없었고 재판부는 수사 초반 거짓진술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지금까지 클라인 박사의 정자로 태어난 생물학적 자녀로 확인된 사람은 48명에 이른다. 미국 매체 ‘디 애틀랜틱’은 18일(현지시간) 기사에서 헤더를 포함한 클라인의 생물학적 친자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클라인 박사가 환자에게 알리지 않고 자신의 정자를 사용한 사실을 처음 밝혀낸 건 그의 생물학적 자녀 중 한 사람인 자코바 발라드(38)였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정자 기증을 통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자코바는 2014년 본격적으로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섰다. DNA 검사 후 계보찾기 사이트에 등록한 그녀는 우연히 자신의 DNA와 일치하는 여성을 발견했다. 같은 인디애나 주에 살고 있던 이들은 모두 인공수정으로 태어났다는 공통점을 발견했고 일단 클라인 박사에게 시술을 받은 환자를 찾는데 주력했다. DNA 검사결과를 대조하다 같은 유전자를 가진 2명의 여성을 추가로 찾아낸 이들은 어느새 8명까지 늘어났다. 같은 의사에게 시술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유전자를 가졌다는 사실을 수상히 여긴 이들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결국 모두 클라인 박사의 친자로 밝혀졌다.
자코바는 “이복형제가 점점 늘어날수록 신기하기도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경악했다”면서 “처음 이복자매를 발견했을 때 단번에 내 핏줄인 걸 알았다. 그녀는 나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고 설명했다. 헤더 역시 자코바가 찾아냈다. 자코바는 지난해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어머니들의 충격도 크다. 클라인 박사는 우리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어 “그나마 이복형제들 사이에 가족애가 싹 튼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했다.
1981년 클라인 박사에게 인공수정 시술을 받은 리즈 화이트(66) 여사는 그저 남편과 닮은 의료연수생의 정자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클라인 박사의 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밝혔다. 그녀는 “당시는 불임시술이 흔치 않을 때라 친자식이 아닌 게 들통나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면서 “클라인 박사는 나에게 남편을 꼭 닮은 의료연수생을 찾아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아무도 모르도록 해주겠다고 안심시켰다”고 회상했다. 리즈 여사의 아들 매튜 화이트(38)는 자신이 정자 기증을 통해 태어났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생물학적 아버지가 클라인 박사라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클라인 박사의 뉴스를 보는 순간 우연이라기에는 나와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 생물학적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처음 본 그 날을 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자코바는 “우리 외에도 줄리 하몬, 카일리 고트, 앰버 스태포드 등 지금까지 클라인 박사의 생물학적 자녀로 밝혀진 사람은 총 48명”이라면서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환자 동의 없이 의사 본인의 정자나 난자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라인 박사는 논란이 불거진 2017년 환자에게 알리지 않고 자신의 정자를 사용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당시에는 정자 기증이 흔치 않아 불임 환자를 모두 소화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억울해했다. 실제로 70~80년대에는 불임치료제가 없었고 정자은행은 더더욱 존재하지 않았기에 의사들은 정자 기증을 받는데 애를 먹었다.
영국매체 데일리메일은 현재까지 밝혀진 클라인의 생물학적 자녀 중 가장 어린 남성의 출생연대를 보면 정자은행이 보편화되기 전 출생자라면서, 그때부터는 클라인이 자신의 정자 사용을 중단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클라인 박사가 누구에게 자신의 정자를 수정시켰는지에 대한 기록은 이미 사라진 상태라 확인이 불가능하다. 미국 경찰은 정자를 기증받은 개인이 DNA 검사를 받지 않는 이상 추적이 불가능해 클라인의 생물학적 자녀는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