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국립대학과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팀은 멕시코 동부에 서식하는 작은 전갈인 디플로센트러스 멜리치(Diplocentrus melici)의 독을 연구했다. 연구팀은 이 전갈에서 0.5 마이크로리터의 독을 추출했는데, 공기 중에 노출된 후 붉은색과 파란색의 물질로 변하는 것을 관찰했다. 각각의 물질을 분석한 결과 이 물질은 벤조퀴논(benzoquinone) 계통의 화학 물질로 밝혀졌다.
스탠포드 대학의 리처드 제어 교수는 이 화학물질을 실험실에서 합성해 박테리아에 대한 항생 능력이 있는지 확인했다. 추출한 전갈 독이 너무 소량이라 그대로 실험에 사용하기 어렵고 어차피 약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실험실에서 비슷한 화학 물질을 합성해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험 결과 두 가지 벤조퀴논은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과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다제 내성 결핵균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나 새로운 결핵 치료제 개발에 희망을 보여줬다. 물론 실제 약물 개발까지는 많은 단계가 남아 있지만, 후보 물질이 많을수록 신약 개발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희망적인 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황색포도상구균과 결핵균 모두 이제는 많은 항생제에 노출되어 내성을 지닌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특히 여러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다제 내성균의 출현으로 약물을 혼합하거나 교체해도 제대로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항생제 남용을 줄이는 한편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전갈을 비롯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의 독에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페니실린을 만든 푸른곰팡이처럼 언젠가 전갈이 수많은 생명을 구할지도 모른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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