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소모전 대비 부족한 유럽…포탄·발사체 생산능력 확충이 최대 과제
K9·천무, 빠른 납기·현지생산 앞세워 폴란드 넘어 유럽 시장 확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장기화하는 가운데 유럽의 약점으로 탄약 비축량과 생산능력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러시아와 장기간 소모전을 벌일 경우 현재 생산체계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 등 한국산 무기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5일(현지시간) 유럽 국방 관계자들을 인용해 현재 유럽이 러시아와 장기간 소모전을 지속할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확인됐듯 대량의 탄약과 장비를 끊임없이 공급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이 전쟁 지속 능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방비를 크게 늘렸지만 생산능력과 공동조달에서는 여전히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유럽회계감사원에 따르면 EU 회원국의 국방비는 2020~2025년 약 79% 증가했지만 국가별로 분산된 방산체계와 산업 병목현상 탓에 2030년까지 충분한 방위 준비태세를 갖출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EU는 우크라이나에 포탄 100만 발을 공급한다는 목표도 당초 계획보다 8개월 늦게 달성했다.
전쟁 길어질수록 중요해진 ‘빨리 많이 만드는 능력’
이런 상황에서 한국 방산업계가 유럽에서 존재감을 키운 배경도 성능과 가격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미 가동 중인 양산라인에서 무기를 빠르게 공급하고, 이후 현지 생산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사례가 폴란드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을 대규모로 도입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2년 첫 K9 계약을 체결한 뒤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초기 물량 24문을 출고하며 빠른 공급 능력을 보여줬다.
천무 역시 완제품 수출에서 현지 생산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폴란드 WB그룹은 천무의 폴란드형인 호마르-K용 유도탄을 현지에서 생산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전시에 발사체를 해외 공급망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국에서 확보하려는 폴란드의 요구와 맞아떨어진 것이다.
결국 폴란드의 한국 무기 도입에는 당장 필요한 물량을 빠르게 확보해 전력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생산·정비 능력을 자국에 구축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루마니아엔 K9 공장, 크로아티아엔 천무 18대
이 같은 방식은 다른 유럽 국가로도 확산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월 루마니아 페트레슈티에서 K9 생산시설 착공식을 열었다. 한화의 유럽 첫 지상장비 생산거점으로, 현지에서 K9을 생산하고 정비·공급망까지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천무의 유럽 확장도 이어지고 있다. 크로아티아 정부는 지난 4일 K239 천무 18대와 유도탄, 관련 장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사업 규모는 부가가치세를 제외하고 4억 3520만 유로(약 6800억원)이며 전체 물량은 계약 뒤 24~36개월 안에 인도될 예정이다.
크로아티아는 기존 노후 BM-21 그라드 계열을 천무로 교체할 계획이다. 크로아티아 국방부는 천무 도입으로 기존 포병보다 훨씬 먼 거리의 표적을 정밀·대량 타격할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천무는 한 발사대에 서로 다른 종류의 로켓 모듈 2개를 동시에 탑재할 수 있으며 300㎞급 장거리 타격 능력도 제공한다.
특히 이번 사업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뿐 아니라 폴란드 WB일렉트로닉스도 참여한다. 한화가 천무 발사대와 탄약을 공급하고, WB일렉트로닉스가 지휘통제체계 공급과 통합을 맡는다. 폴란드에서 구축한 천무 현지화 생태계가 다른 유럽 국가의 사업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유럽 재무장의 핵심은 전차나 자주포를 몇 대 더 확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손실된 장비를 얼마나 빨리 보충하고 포탄과 유도탄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K9과 천무가 유럽에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폴란드에서는 대규모 조달과 현지 생산으로, 루마니아에서는 K9 생산거점 구축으로, 크로아티아에서는 신규 천무 도입으로 이어지면서 한국 방산의 유럽 진출도 단순 완제품 판매를 넘어 생산·정비·공급망 구축 단계로 넓어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유럽이 원하는 무기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단순히 가격이 싸거나 성능이 뛰어난 무기가 아니라 빨리 많이 공급하고, 현지에서 계속 생산·보충할 수 있는 무기가 중요해진 것이다. 이 지점에서 K9과 천무를 앞세운 한국 방산업계의 빠른 납기와 현지생산 모델이 경쟁력을 얻고 있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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