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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합병했는데 왜 정부가 배상?…美 엘리엇 분쟁, 승소 뒤 다시 패소한 이유 [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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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국가기관 아니라던 英 법원…정부 개입에 따른 손해는 재심리
환송중재서 인과관계 인정…엘리엇 약 1540억원 지급 요구, 정부 후속 대응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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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 삼성타운(왼쪽)과 미국계 투자회사 엘리엇 창업자 폴 싱어. 별도로 촬영한 자료사진을 병합·편집했다. 삼성타운 사진=연합뉴스, 싱어 사진=World Economic Forum·위키미디어 커먼즈(CC BY-SA 2.0)


삼성 계열사끼리 합병했는데 왜 한국 정부가 배상해야 할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국제투자분쟁에서 정부가 다시 패소하면서 거액의 배상 부담을 안게 됐다. 중재판정부는 합병 자체가 아니라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개입해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에 손해를 입힌 데 책임을 물었다.

한국 법무부는 1일 엘리엇과의 국제투자분쟁(ISDS) 환송중재에서 정부가 패소했다고 밝혔다. 판정부는 지난달 30일 오후 7시쯤(한국시간) 정부가 엘리엇에 약 4849만 달러(약 660억원)와 지연이자 등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정부는 지난 2월 영국 법원에서 기존 중재판정의 일부를 취소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시 사건을 심리한 판정부가 정부 개입과 엘리엇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면서 7개월 만에 배상책임이 되살아났다.

엘리엇도 30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판정 이행을 요구했다. 엘리엇이 제시한 금액은 배상금에 누적 이자와 법률·소송비용 등을 합친 약 1억1300만 달러(약 1540억원)다. 법무부가 밝힌 약 660억원은 원금이므로, 두 금액은 계산에 포함한 항목이 다르다.

삼성 합병 비용 대신 내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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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의 모습.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정부 개입이 이번 국제투자분쟁의 쟁점이 됐다. 2023.10.27. 연합뉴스


분쟁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 시작됐다.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은 합병에 반대했다. 이후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부당하게 개입해 손해를 입었다며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근거해 중재를 제기했다.

ISDS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대상국 정부의 조치로 입은 손해에 대해 국제협정상 책임을 묻는 절차다. 이번 사건도 삼성에 합병 비용이나 배상금을 내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다. 정부의 개입이 투자자의 손실을 초래했는지가 핵심이었다.

환송중재 판정부는 정부가 합병에 찬성하도록 개입한 행위와 엘리엇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기업 간 합병에서 비롯한 분쟁이지만, 정부의 행위에 책임을 물었기 때문에 지급 의무도 정부에 생긴 것이다.

영국 법원 판단은 그대로인데 왜 다시 패소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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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호 당시 법무부 장관이 지난 2월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에 대한 영국 법원의 일부 취소 판결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영국 법원에서 얻어낸 승소에도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표를 곧바로 한국 정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앞서 중재판정부는 2023년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한미 FTA상 정부에 귀속되는 조치가 아니라며 중재지인 영국의 법원에 판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올해 2월 영국 법원은 국민연금을 국가기관으로 본 기존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판정 일부를 취소했다.

다만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개입 자체에 따른 책임까지 없앤 것은 아니었다. 법원은 이 개입이 실제로 엘리엇의 손해를 초래했는지를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중재판정부에 돌려보냈다. 양측 모두 항소하지 않으면서 원 중재를 맡았던 중재인 3명이 다시 심리했다.

이번 판정은 국민연금을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다는 영국 법원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의 법적 지위와 별개로 정부 개입이 엘리엇의 손실로 이어졌다고 본 것이다. 배상책임을 인정한 결론은 같지만, 그 결론에 이른 법적 근거는 달라졌다.

지난 2월 거론된 약 1600억원은 당시 배상 원금과 이자 등을 합친 금액이다. 당시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배상의무가 “잠정적으로 소멸해 다시 판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존 판정 취소가 분쟁의 최종 종결을 뜻하지는 않았던 셈이다.

엘리엇은 이번 성명에서 하루 1만 달러 넘는 이자가 계속 쌓인다며 지급을 촉구했다. 추가 다툼이 납세자의 부담을 키운다는 주장도 폈다. 이는 조속한 판정 이행을 요구하는 엘리엇 측 입장이다.

정부는 판정문을 분석해 후속 대응을 정할 방침이다. 법무부는 관계부처와 정부 대리 로펌, 외부 전문가 등과 함께 판정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판정을 수용해 지급할지, 다시 취소 절차에 나설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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