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뉴욕 정상회담 거론하며 2000억 달러 대미 투자 개시 합의 주장
알래스카 LNG는 검토 단계…정부 “상업적 합리성·국내법 절차 전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이재명 대통령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에 돈을 넣기로 확정한 것일까. 한국 정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아직은 아니다. 양국은 사업 검토를 시작하기로 했지만, 실제 투자는 상업성과 국내법상 조건을 따져 결정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백악관 발표 행사를 마친 뒤 트루스소셜에 “뉴욕에서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을 만났고, 우리는 미국에 대한 2000억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적었다.
그가 거론한 만남은 지난달 22일 유엔총회를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다. 당시 백악관은 두 정상이 조선 협력 등 여러 현안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게시물에서 대미 투자 개시 합의도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알래스카 LNG에 대해서는 양국이 500억 달러 규모 프로젝트의 협력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알래스카 자원 개발과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 창출도 성과로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1일 엑스(X)에 올린 글에서 투자에 붙은 조건을 설명했다. 알래스카 LNG 사업은 상업성을 확인하고 대한민국 법 절차에 부합하는 것을 전제로 실무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전체 투자 추진에 합의했다는 설명과 개별 사업의 투자 확정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검토 시작’과 ‘투자 확정’은 다르다
알래스카 LNG 사업은 북부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남부까지 파이프라인으로 옮긴 뒤 액화해 해외로 수출하는 프로젝트다. 가스관뿐 아니라 수출 터미널 등 대규모 기반 시설을 건설해야 한다.
산업통상부가 1일 공개한 추진 계획은 이 사업에 대해 양국이 검토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한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의 상업적 합리성 요건과 국내법상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추진 여부를 판단한다는 설명도 붙였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이 조건은 한국 측 설명에만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설명 자료 역시 상업적 합리성과 적용 가능한 국내법상 요건 충족을 전제로 알래스카 사업에 대한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양국이 알래스카 사업을 논의하기로 한 사실과 한국이 특정 금액을 투자하기로 최종 승인했다는 주장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사업 규모만으로 한국의 확정 투자액이나 송금액을 판단할 수는 없다.
정부도 미국 측 발표에 대해 투자 여부와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입장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를 트럼프의 SNS 게시물에 대한 후속 반박으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 해당 정부 설명은 트럼프가 뉴욕 회담을 거론한 게시물이 보도되기 전부터 나왔다.
텍사스·원전·알래스카, 같은 단계 아니다
혼선을 줄이려면 함께 발표한 세 사업의 진행 단계를 나눠 봐야 한다.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는 한국 정부가 상업적 합리성을 판단하고 국내 심의·의결과 국회 보고를 마친 제1호 전략투자 사업이다. 총사업비는 223억 달러이며, 인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구상이다.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은 협력의 큰 틀에 합의한 단계다. 산업부는 개별 원전 사업이 모두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부지와 사업 구조, 건설 일정 등을 구체화하고 사업별 검토와 국내 절차를 거쳐 최종 추진 여부를 정한다.
알래스카 LNG는 사업 검토에 착수하는 단계다. 세 사업을 한 자리에서 발표했다고 해서 투자 결정까지 모두 끝났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알래스카 사업 참여를 거부한 것도 아니다. 정부는 사업을 추진할 경우 한국 기업의 기자재 공급 기회와 경제성 있는 장기 LNG 구매 조건, 생산 가스에 대한 우선 접근권 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비용과 수익뿐 아니라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할 실익도 검토 대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투자 약속을 미국의 건설 사업과 일자리로 연결해 홍보했다. 한국 정부는 실제 자금 투입에 앞서 충족해야 할 조건을 강조했다. 앞으로 확인할 핵심은 알래스카 사업이 그 조건을 충족하는지, 한국이 얼마를 어떤 방식으로 투자할지다.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한국의 알래스카 투자 확정을 선언하기는 어렵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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