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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식의 문화유랑기] ‘구름의 족보’ 아세요? - 구름에 얽힌 70년대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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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모도에서 본 저녁 노을


여름의 절정 8월. 푸른 하늘에 떠가는 흰구름을 보면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중력과 부력이 아슬한 균형을 이룬 경계를 떠가는 구름은 천변만화하는 변화와 자유로운 방랑의 표상으로 누구에게나 그리운 추억거리를 만들어주는 존재이다. 젊은 시절 하늘의 구름을 보고 방랑과 그리움을 꿈꾸지 않은 이 뉘 있으랴.

중력에 붙잡혀 땅거죽에 찰싹 들러붙은 채 밥벌이에 매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푸른 하늘 높이 둥둥 떠다니는 구름이야말로 자유 그 자체가 아닐까. 간단한 배낭짐 매고 훌쩍 떠나, 어느 산기슭에서 노을진 금빛 구름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자유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구름을 보면 계절마다 형태와 느낌이 다 다름을 알 수 있다. 여름 구름은 뭉실뭉실 뭉쳐져 산 위로 솟아오르거나 커다란 뭉치솜으로 하늘을 떠다닌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뇌성벽력을 머금고 있는 구름이다. 이에 비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높다란 데서 가볍게 떠다니는 가을 구름은 표표한 느낌을 준다. 여름 구름이 청년이라면 가을 구름은 벌써 에너지를 많이 잃어버린 초로의 인생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늘 보는 구름이지만 구름처럼 다양한 얼굴과 족보를 가지고 있는 존재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같은 구름의 내력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이는 의외로 드물다. 구름 족보를 간략히 정리해보면, 지상 0~13km 사이의 공중에 떠도는 구름을 높이와 모양에 따라 권적운, 고적운, 적란운 등등으로 나뉘어진다. 구름이 지상 가까이에 머무는 것을 안개라 한다.

재미삼아 다양하고 아름다운 구름 족보를 일별해보자.

1. 하층운(0~2km)

- 층적운

- 층운(안개구름)

- 적운(뭉게구름)

- 적란운(소나기구름)

2. 중충운(2~7km)

- 고적운(아이들 그림에 잘 나오는, 꼬리 달려 떠다니는 덩어리 구름이 바로 이것이다)

- 고층운

- 난층운(비구름)

3. 상층운(5~13km)

- 권운(새털구름)

- 권적운(조개 또는 비늘구름)

- 권층운

헤르만 헤세는 어느 글에선가 구름 얘기를 길게 하면서, ‘나는 젊었을 때부터 구름에 대해 경건하고 엄숙한 태도를 지녔었다’라고 말했다. 헤세처럼 구름에 대해 할 얘기가 많은 사람도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수와 애조에 찬 그의 자전적 소설 <페터 카멘친트>에서 헤세는 아예 멍석을 펴놓고 구름 얘기를 한 쪽이나 길게 늘어놓고 있다. 이 아름다운 구름 얘기는 길어서 여기 내려놓지는 않겠지만, 그의 짧은 시 한 편 감상하는 걸로 가름하자.

젊은 시절부터 늘 자유와 방랑을 갈망했던 헤세는 구름을 소재로 많은 시와 산문을 남겼는데, 그중 ‘구름’은 스스로를 구름이라 생각하는 아름다운 로맨티스트의 시다.

구름이여,

아름답고 떠도는 쉼없는 구름이여!

내가 철없는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구름을 좋아했고 유심히 쳐다보았지만,

나 역시 구름처럼 방랑하면서,

도처에서 낯설게,

유한과 무한 사이를 떠돌면서

인생을 살아가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 미국의 천문학자 할로 섀플리는 별과 인간의 관계를 구름에 비유해 아름다운 명언을 남겼다.

‘우리는 뒹구는 돌들의 형제요, 떠도는 구름의 사촌이다.’

끝으로 여담 하나. 70년대, 퇴계로 대한극장에서 상영한, 아랍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 <바람과 라이온>의 마지막 대사에도 ‘구름’이 나온다.

숀 코네리, 캔디스 버겐이 나오는 이 영화에서 아랍인 족장 숀이 죽음의 전장으로 황망히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납치한 동안 사랑하게 된 미국 여자와 헤어질 때 한 말인데,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마상에서 여자를 내려다보며 한 그의 마지막 작별인사는 이런 것이었다.

‘저녁바람에 밀리는 금빛 구름이 되어 다시 만납시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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