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른들의 미술사

낯선 얼굴로 남은 화가 [으른들의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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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웬 존, ‘자화상’ 1902, 캔버스에 유채, 34.9x44.8cm, 테이트 브리튼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얼굴

그웬 존(1876~1939)의 ‘자화상’(1902)을 처음 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젊은 여성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자신을 드러내려는 자화상처럼 보이지 않는다. 붉은 타탄 무늬 셔츠에 검은 숄을 걸치고 목에는 브로치 장식을 달았다. 그런데 화려한 색과 장식에도 얼굴에서는 좀처럼 감정이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자화상을 볼수록 오히려 그웬 존이라는 사람을 알기 어려워진다. 아무에게도 속을 내보이지 않을 듯한 그웬 존의 성격은 목 끝까지 채운 브로치 장식으로도 읽을 수 있다. 얼굴은 정면을 향하지만 어떤 정보도 내어주지 않는 이 침묵이야말로 이 그림을 오래 마주하게 만드는 낯섦의 정체다.

주로 이름 없는 여성들의 초상을 무채색 톤의 색채로 그려낸 그웬 존은 웨일스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냈다. 그녀는 화가 오거스터스 존의 누이였고, 훗날 로댕의 모델이자 연인이 되었지만, 생전에는 남동생의 그늘과 연인 로댕의 그늘에 가려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만년에는 파리 근교 뫼동에 은둔하다시피 살았다. 이 1902년 ‘자화상’은 그녀가 슬레이드 미술 학교를 떠난 직후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그리고 2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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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귀스트 로댕, ‘그웬 존(뮤즈를 위한 연구)’, 1904, 석고, 높이 10.2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로부터 2년 뒤인 1904년, 그웬 존은 프랑스에 정착했고 오귀스트 로댕의 작업실을 찾았다.

1900년대 초 로댕은 이미 프랑스를 넘어 유럽 미술계의 국제적 거장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로댕은 유럽과 미국에서 작품 주문과 전시 요청이 이어져 사실상 현대 조각의 가장 유명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웬 존은 이미 슬레이드 미술 학교에서 교육받은 화가였지만, 파리에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모델 일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로댕의 모델이 되었으나 두 사람은 작업실에서의 모델과 조각가 관계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웬 존이 아버지뻘인 로댕에게 강렬한 애착을 갖게 되었고, 두 사람의 관계는 곧 연인 관계로 이어졌다.

1902년에는 그웬 존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그렸고, 2년 뒤에는 로댕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각했다. 같은 그웬 존이지만 시선의 주인이 달라진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그웬 존을 로댕의 모델과 연인으로 기억하기도 했지만, 로댕을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던 독립적인 화가였다. 새삼스레 로댕이 그녀를 화가로 만들어준 것도 아니고, 그녀의 예술이 로댕에게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로댕과의 만남은 이미 존재하던 한 화가의 삶에 강렬하게 끼어든 일탈에 가까웠다.

●누구의 뮤즈도 아닌 바로 나

로댕과의 관계는 그웬 존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녀는 로댕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고,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그웬 존을 로댕의 연인이나 모델이라는 이름으로만 기억한다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그녀는 여성과 아이, 실내의 인물을 반복해서 그리며 자신만의 조용하고 내밀한 회화 세계를 만들어간 한 화가다. 생전에 동생 오거스터스 존의 명성에 가려졌고, 로댕의 그늘 뒤에 가려져 있었지만 오늘날 그녀의 작품은 오히려 그 고요함과 독자적인 시선 때문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1902년 자화상을 다시 보면 이 얼굴은 아직 로댕의 뮤즈가 아니다. 누구의 연인도, 누구의 모델도 아니다. 유명 조각가가 바라보기 2년 전, 그웬 존이 먼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이 그림의 낯섦은 바로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훗날의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그림 속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로댕이 발견하기 전부터 이 얼굴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웬 존은 끝내 누구의 뮤즈로만 남기에는 너무 강한 존재였다. 그림 속의 낯설고 조용한 얼굴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한 얼굴도, 유명 조각가의 뮤즈가 된 얼굴도 아니다. 그저 화가 그웬 존이 스스로 바라본 자기 자신의 얼굴이다.

이미경 연세대 연구교수·미술사학자 bostonmura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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