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젊은이들의 일상 대화에 한국어가 스며들고 있다. K팝과 한국 드라마에서 접한 ‘진짜’와 ‘미안해’를 친구끼리 대화할 때 섞어 쓰는 식이다. 일본 기업의 광고에도 ‘괜찮아’가 등장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일 한국 문화의 인기가 일본 청년층의 언어생활로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어로 ‘정말’을 뜻하는 ‘혼토니’가 나올 법한 자리에 한국어 ‘진짜’를 쓰는 모습이다. 일본어를 한국어로 대체했다기보다 익숙한 한국어 표현을 대화에 끼워 넣는 현상에 가깝다.
도쿄에 사는 대학생이자 K팝 팬인 다카마쓰 모에카(21)는 평소 대화에서 ‘진짜’와 ‘미안해’를 자주 쓴다고 NYT에 말했다. 한국에 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괜찮아’라는 말도 곧잘 사용한다고 했다.
NYT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쓰는 이런 방식을 ‘한보노’라고 소개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합친 말이다. 도쿄의 한국어 학원에서 일하는 후지사와 마야는 친구 사이에서 쓰는 격식 없는 표현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K팝 팬들의 말에서 광고 문구로
NYT가 인터뷰한 전문가들은 K팝과 한국 드라마를 즐기는 과정에서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사람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유행기에는 한국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형’과 ‘언니’ 같은 호칭도 일본에서 더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간사이대의 최은경 한국어 교수는 한국어 표현을 사용하는 행동이 K팝이나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는 뜻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않아도 짧은 단어로 취향과 친밀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도 이런 흐름을 광고에 활용한다. 일본 음료 기업 산토리는 지난 5월 차 음료 ‘비쇼쿠 칸차’(美色韓茶) 광고를 공개하며 ‘괜찮아’를 핵심 문구로 내세웠다. 걸그룹 베이비몬스터의 아사가 출연한 이 광고에는 ‘괜찮아’의 한국어 발음을 가타카나로 옮긴 ‘ケンチャナ’가 등장한다.
산토리는 실수하더라도 ‘괜찮아’라고 자신을 격려하며 긍정적으로 생활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밝혔다. 한국어가 콘텐츠 속 대사를 넘어 일본 소비자에게 말을 거는 광고 문구로도 쓰인 사례다.
숨겨 쓰던 말에서 취향을 드러내는 말로
NYT는 이 같은 풍경을 일제강점기와 대비했다. 당시 식민 당국은 한국어 사용을 억압하고 일본어 교육을 강요했다. 이제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일본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어 표현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어를 섞어 쓰는 말투가 일본 사회 전반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 NYT도 일부 청년과 K팝 팬층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짚었다. 이를 일본인 전체의 언어 습관 변화로 확대해 해석하기는 어렵다.
일본에서 자란 재일동포 이상철(64)씨에게는 변화가 더욱 뚜렷하다. 그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 ‘담배’나 ‘박치기’ 같은 한국어를 일종의 은어처럼 나눠 썼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자신들끼리만 공유하던 말이었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관계자인 이씨는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이 국적에 선을 긋기보다 대상 자체의 매력을 판단한다고 평가했다. 과거 소수 집단 안에서 통하던 한국어가 이제는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는 표시로 쓰이고 있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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