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잠항·SLBM 운용 능력 강화…해외 겨냥한 장보고-Ⅲ 배치-Ⅱ
캐나다는 북극 운용, 폴란드는 발트해·납기 중시…‘스펙 밖 경쟁력’이 갈랐다
수직발사관 10개에 공기불요추진체계(AIP)와 리튬이온 배터리까지 갖춘 3600t급 국산 잠수함 ‘서희함’이 처음 내부를 공개했다. 장기간 물속에 머물면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운용할 수 있는 한국의 최신 재래식 잠수함이다.
한화오션은 지난 15일 경남 거제사업장에서 올 하반기 진수를 앞둔 장보고-Ⅲ 배치-Ⅱ 2번함 서희함을 취재진에게 공개했다. 길이 89m인 서희함은 3000t급 도산안창호급보다 체급을 키웠고 SLBM을 운용할 수 있는 수직발사관도 기존 6개에서 10개로 늘렸다.
추진체계도 강화했다. AIP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결합해 수중 작전 지속 능력과 고속 기동 능력을 함께 높였다. 한화오션은 이를 통해 재래식 잠수함 가운데 최장 수준의 잠항 능력을 확보했다고 설명한다. 국산화율도 약 80%에 달한다.
성능표만 보면 해외 수주전에서도 경쟁력이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장보고-Ⅲ 배치-Ⅱ를 기반으로 한 한화오션의 잠수함은 최근 캐나다와 폴란드의 대형 사업에서 잇따라 최종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히 잠수함 성능의 우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캐나다는 북극 중시…그런데 승자 212CD도 ‘검증 논란’
캐나다는 지난 7월 최대 12척을 도입하는 초계잠수함사업(CPSP)의 우선협상 공급자로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TKMS)을 선정했다. 한화오션은 예비 공급자로 남았다. 캐나다 정부는 두 업체 모두 강한 제안을 냈다고 평가하면서도, 최종적으로 플랫폼과 유지 지원, 경제·전략적 이익, 가격과 계약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TKMS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캐나다가 특히 중시한 조건 중 하나는 북극 작전이다. 캐나다는 차기 잠수함에 장거리·장기 작전 능력과 함께 빙하 아래 운용 능력을 요구해왔다. 대서양·태평양뿐 아니라 북극에서도 지속해 작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TKMS의 212CD가 북극에서 이미 충분히 검증된 잠수함인지에 대해서는 현지에서도 의문이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 해양안보 전문가들은 최근 212CD가 빙하 아래 긴급 상황에서 신속하게 수면으로 올라오는 ‘빙상 부상 능력’을 충분히 갖췄는지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장기간 빙하 아래에서 운용하면 항속 거리와 지속 능력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는 한화오션이 단순히 ‘북극 성능에서 밀려 탈락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캐나다는 작전 성능뿐 아니라 정비·부품 공급, 자국 산업 참여, 비용과 장기 협력까지 한꺼번에 평가했다.
납기도 변수다. 캐나다 정부는 TKMS와의 협상을 통해 첫 4척을 2034년까지 인도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TKMS가 독일·노르웨이 등 기존 수주 물량도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만큼 실제 일정 준수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캐나다 수주전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다. TKMS와의 최종 협상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예비 공급자인 한화오션과 협상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폴란드는 ‘발트해+납기+산업협력’…A26이 높은 종합점수
폴란드의 오르카(Orka) 사업에서도 한화오션은 장보고-Ⅲ 배치-Ⅱ를 제안했지만 스웨덴 사브의 A26에 밀렸다. 폴란드는 지난해 11월 스웨덴을 우선 선택한 뒤 지난 6월 A26 잠수함 3척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폴란드 정부는 평가 과정에서 단순 제원뿐 아니라 납기와 산업 협력, 기술 이전, 비용, 유지 조건 등을 함께 따졌다. 스웨덴 제안은 이런 항목을 종합한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폴란드 해군이 제시한 요구를 모두 충족한 유일한 제안으로 평가됐다.
발트해라는 작전 환경도 영향을 줬다. 폴란드는 좁고 수심이 얕은 발트해에서 운용할 잠수함을 원했고, 스웨덴은 오랫동안 발트해 환경을 전제로 잠수함을 설계·운용해왔다.
스웨덴은 납기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폴란드는 첫 A26을 2030년까지 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전까지 전력 공백을 줄이기 위해 A17 잠수함을 임시로 제공받고 승조원 교육도 미리 시작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여기에 폴란드 조선소의 참여와 기술 이전, 유지·보수 능력 확보까지 묶었다. 스웨덴은 폴란드 방산업체를 자국 무기 생산망에도 참여시키기로 했다. 잠수함 한 척을 파는 것이 아니라 현지 산업과 장기 협력까지 패키지로 제시한 셈이다.
잠수함 수출, ‘누가 더 세냐’보다 ‘어디에 더 맞느냐’
캐나다와 폴란드 사례는 잠수함 수주전이 단순한 제원 경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수직발사관 숫자와 무장량, 잠항 시간이 강점이어도 발주국이 원하는 작전 환경과 납기, 유지 보수, 산업 협력 조건에 맞지 않으면 결정적인 우위로 이어지지 않는다.
캐나다는 북극을 포함한 3대 해역에서의 지속 작전과 장기 군수 지원, 자국 산업에 돌아올 경제적 이익을 함께 봤다. 폴란드는 발트해 운용성과 빠른 전력 공백 해소, 기술 이전과 자국 산업 참여를 중시했다.
특히 캐나다에서 212CD의 북극 운용 능력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점은 이번 결과를 ‘성능에서 한국 잠수함이 밀렸다’는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발주국이 사는 것은 잠수함 한 척의 제원표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운용할 플랫폼과 정비·훈련·산업 협력·정부 간 안보 협력까지 묶인 전체 패키지에 가깝다.
서희함의 공개는 한국 잠수함 기술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해외 시장에서는 뛰어난 플랫폼을 만드는 것만으로 수주를 보장할 수 없다는 현실도 드러낸다. 장보고-Ⅲ 배치-Ⅱ가 다음 수출전에서 넘어야 할 벽은 이제 성능표 밖에 있는 셈이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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