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이 그림은 이상하다. 화면에는 단 한 사람만 앉아 있다. 여성인지 남성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고개를 숙이고 두 팔을 몸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얼굴은 어둠 속에 묻혀 있고, 주변에는 사건을 설명해 줄 만한 인물이나 배경도 없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선은 이 인물에게 오래 머문다. 헨리 푸젤리의 ‘침묵’은 1799~1801년쯤 제작된 유화로, 현재 취리히 쿤스트하우스에 소장돼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그림이 단순히 조용한 사람을 그린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인물의 침묵은 단순히 소리가 없는 상태라기보다, 생각과 감정이 안으로 깊이 침잠한 순간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데 오히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이다.
●목사에서 ‘화가’로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1741~1825)의 삶 자체도 ‘침묵’만큼이나 평범하지 않았다. 1741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화가이자 작가였던 요한 카스파르 퓌슬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처음부터 화가가 될 운명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스무 살에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맥베스’ 번역을 계기로 영국 대사의 권유로 런던으로 진출해 미술에 눈을 뜬 뒤 화가의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1770년 이탈리아로 떠나 로마에서 약 8년 동안 고대 조각과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연구했다. 그는 1779년 아예 런던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셰익스피어와 밀턴 같은 문학 작품을 독창적이고 극적인 이미지로 바꾸면서 이름을 알렸다. 런던에서 그는 헨리 푸젤리로 불린다.
그는 글을 쓰고 강의했으며, 문학과 고전, 신화와 인간의 심리에서 그림의 소재를 찾았다. 푸젤리는 이후 20년 가까이 왕립미술원의 교수가 되었고 1800년에는 왕립미술원의 관리인까지 올라 사망할 때까지 두 직책을 유지했다.
당시로서는 비교적 장수한 편이었으며 84세에 사망한 그는 세인트폴 대성당 지하에 잠들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세인트폴 대성당 지하에 묻힌다는 것은 더없는 영광이다. 영국 미술에 헌신한 스위스 태생의 푸젤리에게 영국은 국가 차원의 예우를 다한 것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침묵
셰익스피어 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화가가 ‘침묵’을 그렸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푸젤리에게 침묵은 평온한 휴식이나 무기력이 아니라, 무언가가 터져 나오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이다. 그러나 ‘침묵’이 이상한 그림인 이유는 우리가 그림에서 기대하는 것을 하나씩 거부하기 때문이다. 보통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다. 인물이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 단서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이야기를 설명해 줄 장치가 거의 없다. 인물은 우리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무언가를 가리키지도 않는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안쪽으로 숨어버린 듯하다.
그래서 관람자는 오히려 침묵의 빈자리를 자신의 감정으로 채우게 된다. 슬픔. 후회. 절망. 아니면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그린 것으로 읽힌다. 특히 TV 화면 밖으로 기어 나오는 공포 영화처럼 초자연적이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푸젤리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화면 위에 남겨놓은 것은 단 하나, ‘침묵’이라는 제목뿐이다.
이미경 연세대 연구교수·미술사학자 bostonmural@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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