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병력 부족 현상을 겪는 러시아가 심각한 질환이 있는 취약계층 남성까지도 강제로 징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CNN의 지난 25일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2년 개전 당시 대규모 동원령을 내리면서 자국민이 대거 탈출하자 채무 탕감 등 금전적 인센티브를 약속하며 병력을 모집해 왔다.
그러나 전쟁이 5년째에 들어선 현재 러시아 남성들이 금전적 인센티브에도 참전을 거부하자 거리나 집에서 강제로 징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CNN이 경험자들의 증언을 인용해 내놓은 보도를 보면 러시아 서부의 한 국영 방산업체에서 일하던 50대 남성은 지난 7월 사복 차림의 남성들에게 붙잡혀 차량에 강제로 태워졌다.
CNN은 “사복 차림의 남성들은 그에게 서류를 내밀고 방문 사실을 확인하는 문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입대 계약서였다”며 “당시 남성은 혈관 질환 및 알코올 의존 문제가 있었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고 전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실종됐다가 며칠 후 러시아가 통제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의 한 훈련장에 있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전화로 알렸다. 그러나 지난달 말 그의 가족은 그가 전투 중 실종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 다른 러시아인은 형제가 지난 7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신원 불명의 남성들에게 붙잡혀 입대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인권 단체에 제보했다. 가족은 석방을 요청했으나 군검찰로부터 “해당 남성이 자발적으로 입대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이 남성 역시 전투 중 실종됐다.
CNN은 “지난 6월부터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600㎞ 떨어진 펜자주에서 강제 징집 사례가 집중됐다”며 “거리의 사람들이 끌려가는 모습이 담긴 영상 등이 온라인에 확산했다”고 전했다.
“‘계약병 할당량’ 압박 심해”우크라이나 매체 유나이티드24는 러시아 당국의 강제집행 배경에는 징병센터에 가해지는 당국의 ‘계약병 할당량’이 있다고 주장했다.
매체는 27일 “러시아 징병센터는 당국의 계약병 할당량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압박을 받고 있다”며 “이는 지역 당국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계약병 모집 요구가 증가하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러시아 내 최소 51개 지역 법원은 2022년 10월 대통령령에 따라 ‘인력 부족’을 이유로 공무원을 기소하고 최대 357달러(한화 약 48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지난 8월에는 러시아 당국이 역시 ‘인력 부족’을 해결하지 못한 공무원에게 최대 595달러(약 80만원)의 벌금 또는 최대 3년의 직무 정지를 부과하는 법안을 국가두마(하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유나이티드24는 “최대 4만 500달러(약 5400만원)에 달하는 입대 보너스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올해 계약병 입대자 수는 전년 대비 10% 감소했다”며 “월별 전장 사상자 수는 신규 입대자 수보다 약 6000명 많다”고 전했다.
러 “18~30세 남성 부동산 거래 통제”러시아 국방부는 강제징집이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지만, 당국이 대규모 동원령을 내리기 전 징집 기피를 막기 위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 3일 영국 더타임스의 일요판인 더선데이타임스는 입수한 유출 문건을 인용해 “러시아가 18∼30세 남성을 대상으로 부동산 거래와 사업자 등록 등에 병역 관련 서류 제출을 의무화하는 규제를 최근 추가로 도입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관련 규정이 강화되면서 징집 대상 연령대 남성은 주택담보대출, 부동산 매매, 사업체 소유자 등록에 앞서 병역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며 “러시아 병역의무법 제22조에 따라 병역 등록을 마쳤거나 등록 의무가 있음에도 등록하지 않은 18∼30세 남성 가운데 예비역이 아닌 사람은 징집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동안 도시 중산층의 반발을 우려해 대규모 동원을 피해 왔지만 지난달에만 러시아군 4만 6000여명이 숨지거나 중상을 입은 것으로 추산되면서 심각한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아짐 이브라힘 미 육군전쟁대학 전략연구소 연구교수는 “지금까지 러시아의 병력 모집은 중산층을 전쟁의 영향에서 차단하기 위해 노동계층 농가와 소수민족에 한정돼 왔다”며 “러시아가 부유한 도시 인구에서 병력을 모집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최종 공세를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짚었다.
송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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