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그을음 없다”며 HGV 시험 성과 폄하
美 전문가 “그을음만으론 판단 불가”…추진체 성능 주목
북한이 한국의 극초음속 활공비행체(HGV) 시험발사 사진에 그을음이 없다는 이유로 성능에 의문을 제기하자 미국 전문가들이 반론을 내놨다. 그을음이 남지 않아도 극초음속 비행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미사일 전문가는 한국의 현무-5급 발사체를 활용했다면 극초음속까지 가속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의소리(VOA)는 17일(현지시간) 미국 항공우주·미사일 전문가들이 한국의 HGV 시험 성과를 둘러싼 북한의 주장에 기술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이인 보이드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국가안보인프라연구소장은 VOA에 비행체 표면에 눈에 띄는 그을음이 없다고 해서 극초음속 비행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보이드 소장은 달 탐사 후 지구로 재진입하는 캡슐처럼 마하 25 수준의 극단적인 속도에서는 기체 표면에 심한 그을음이나 탄 흔적이 남을 수 있지만, 마하 5~15 수준에서는 눈에 띄는 흔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시험 비행체 역시 표면에 탄 흔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비행하지 않았더라도 극초음속에는 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또 발사체의 규모와 표적 해역에 탄착한 점 등을 근거로 제어 비행에 성공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을음 없으니 실패?”…美 전문가들은 달랐다
북한은 지난 15일 장창하 미사일총국장을 내세워 한국의 HGV 시험 성과를 문제 삼았다.
장 총국장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한국 정부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활공체 표면에 그을음이 없고 도색도 깨끗하게 남아 있다며 실제 극초음속 비행에 성공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 국방부는 이튿날 국산 초고온 내열 소재를 적용해 극초음속 환경에서도 표면에 그을음이 남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반박했다.
극초음속 무기는 일반적으로 음속의 5배인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비행하는 무기를 뜻한다. 이 가운데 HGV는 로켓 추진체를 이용해 고속으로 가속한 뒤 분리돼 대기권 안에서 활공하면서 비행 궤적을 바꾸는 무기체계다.
따라서 비행 중 발생하는 열과 표면 상태는 비행 속도뿐 아니라 비행 조건과 내열 소재의 특성 등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그을음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극초음속 비행에 실패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 미국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데이비드 라이트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원자력안보정책연구소 박사도 VOA에 비행체 표면 상태만으로 성능을 판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HGV가 비행을 마친 뒤 바다에 떨어진 점도 표면 상태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美 전문가가 언급한 현무-5…실제 시험 사용했나
특히 라이트 박사는 한국이 현무-5급 발사체를 활용했다면 HGV를 극초음속까지 가속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현무-5는 한국이 개발한 고위력 탄도미사일이다. 대형 탄두를 탑재해 지하 깊숙한 곳의 표적을 타격하도록 설계된 무기로 알려져 있다.
미국 군사 전문매체 워존(TWZ)도 지난 9일 한국의 HGV 시험발사를 분석하면서 현무-5를 언급했다. 매체는 한국이 이미 보유한 탄도미사일 기술을 HGV 발사체 개발에 활용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HGV 시험 당일 안흥시험장에서 현무-5 이동식 발사대(TEL)를 살펴본 사실을 소개했다.
다만 워존은 실제 시험에 사용된 발사체가 기존 탄도미사일을 기반으로 제작됐는지 공개된 사진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라이트 박사 역시 현무-5가 이번 시험에 사용됐다고 확인한 것은 아니다.
워존은 HGV의 외형도 분석했다. 공개된 사진에서는 활공체가 원뿔형에 가깝게 보이지만, 쐐기형 구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다만 사진 해상도가 낮아 정확한 형상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8일 이재명 대통령이 참관한 가운데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 중인 HGV의 첫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시험체는 추진체에서 분리된 뒤 불규칙한 궤도로 활공 비행을 수행하고 지정된 목표 지점에 탄착했다.
그러나 실제 최고 속도와 비행거리, 비행 중 궤도 변경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
라이트 박사는 한국이 공개한 영상과 정보만으로는 비행체가 어느 정도 속도에 도달했는지, 계획한 궤도에 따라 제어 활강을 마쳤는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결국 북한이 제기한 그을음 문제만으로 한국의 극초음속 기술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시험의 구체적인 성능을 독립적으로 입증하려면 실제 비행 속도와 거리, 명중 정확도 등을 보여주는 추가 자료와 후속 시험 결과가 필요하다는 평가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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