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때 세운 표지판 1292개 중 약 200개만 식별
한국군·유엔사 기준선도 달라…남북 군사회담 제안에 北은 침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뒤 북한군은 접경 지역에 철책과 지뢰를 설치하며 경계 요새화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비무장지대(DMZ)에서 지뢰가 터져 우리 군 장병 3명이 다치자 남북은 지뢰가 매설된 위치와 책임을 놓고 맞섰다.
합동참모본부는 유엔군사령부와 공동 조사한 결과 북한이 군사분계선(MDL) 남쪽에 매설한 지뢰가 폭발 원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북한은 이를 부인하며 한국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이 공방의 배경에 군사분계선 위치를 둘러싼 오랜 혼선이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남측이 자국 영토를 침범했다고 주장하지만, 남북이 현장에서 기준으로 삼는 선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지도에 연필로 그은 선…표지판 1292개 중 약 200개만 식별
1953년 정전협정은 군사분계선을 따라 남북 군대가 각각 2㎞씩 물러나도록 해 폭 약 4㎞의 비무장지대를 만들었다. 당시 군사분계선은 1대 5만 축척 지도에 연필로 그었다. 지도 위 선의 폭은 실제 지형에서 약 50m에 해당한다.
정전협정 뒤 현장에서 선의 위치를 표시하려고 세운 표지판 1292개 가운데 현재 식별되는 것은 약 200개뿐이다. 표지판 상당수가 비바람과 지형 변화로 사라지면서 선을 현장에서 확인하기 어려워졌다.
한국군과 유엔사도 서로 다른 좌표를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을 표시한다. 한국군은 2004년 정립한 군사 지도상의 선을 쓰고, 유엔사는 2016년 별도 조사로 만든 좌표를 적용한다. 합참은 북한도 별도 기준선을 쓰고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북한이 정확히 어떤 선을 기준으로 삼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NYT는 2018년 남북 군인들이 비무장지대 안에서 만날 지점을 합의하지 못해 결국 노란 깃발로 장소를 표시했다는 전직 국방부 당국자의 설명도 전했다.
김정은 ‘두 국가’ 노선 뒤 접경 요새화
김 위원장은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다. 북한군은 이듬해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 지뢰와 철책을 설치하고 전술도로와 방벽을 만드는 등 요새화 작업을 벌였다. NYT는 이런 공사가 임시 휴전선을 영구적인 국경으로 굳히려는 움직임일 수 있다는 전문가 분석을 소개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23일 군사분계선 위치를 서로 확인하고 군 통신선을 복원해 우발적 충돌을 막자며 북한에 군사회담을 제안했다. 북한은 아직 호응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서로 다른 기준선을 전제로 접경지 작전이 이어지면 오판과 충돌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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