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방송 실험서 와이퍼·문·오디오 원격 조작…차량 위치·실내 통화에도 접근
달리던 자동차의 전조등이 갑자기 꺼졌다. 와이퍼는 최고 속도로 움직이고 워셔액까지 뿜어냈다. 운전자는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 도로 밖에서 노트북을 든 보안 전문가가 차량을 원격 조작한 것이다.
21일(현지시간) 호주 ABC 방송 탐사보도 프로그램 ‘포 코너스’는 중국 자동차 업체 BYD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픽업트럭 ‘샤크 6’를 대상으로 진행한 사이버 보안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ABC는 자동차 사이버 보안 전문가이자 포티파이 랩스 공동 설립자인 댄 흐레슈추크에게 차량을 2주간 맡겼다. 흐레슈추크는 차량의 소프트웨어와 통신 체계를 분석한 뒤 외부에서 일부 기능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아냈다.
그는 실험에 이용한 디지털 접근 지점에 비밀번호조차 설정돼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ABC의 별도 보도에서도 이 접근 지점에 비밀번호가 없어 차량의 주요 기능 일부를 제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흐레슈추크는 도로 옆에서 노트북을 이용해 차 문을 잠그고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었다. 차량의 대형 화면에 원하는 이미지도 띄웠다.
시속 30㎞ 주행 중 전조등까지 껐다
본격적인 실험은 차량이 움직이면서 시작됐다.
ABC 기자가 샤크 6를 몰고 도로를 달리자 흐레슈추크는 와이퍼를 최고 속도로 작동시키고 워셔액을 분사했다. 이어 전조등을 반복해서 켰다 껐다 한 뒤 아예 소등했다. ABC가 공개한 영상에는 어두운 도로를 비추던 전조등이 갑자기 꺼지는 장면도 담겼다.
당시 차량은 비교적 곧은 도로를 시속 약 30㎞로 달리고 있었다. 샤크 6의 무게는 약 2.6t이다.
다만 흐레슈추크가 차량 전체를 장악한 것은 아니다. 그는 브레이크와 카메라 등 더 중요한 기능에는 접근하지 못했다며 해당 장치들은 비교적 잘 보호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실험은 전문가가 차량을 2주간 직접 확보해 분석한 뒤 진행했다. 모든 BYD 차량을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즉시 원격 조작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제는 차량 조작에 그치지 않았다.
흐레슈추크는 샤크 6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차량 내부 마이크도 원격으로 켰다. 기자가 운전하며 어머니와 전화로 나눈 대화도 들을 수 있었고 이를 녹음했다.
제작진은 녹음한 기자의 “헤이 시리”라는 음성을 편집한 뒤 차량 스피커로 재생하는 추가 실험도 했다. 기자가 잠금이 풀린 아이폰을 차 안에 남겨두자 음성 비서가 반응했고, 주소와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를 불러냈다. 이는 차량 해킹만으로 휴대전화 정보까지 곧바로 빼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잠금이 풀린 휴대전화를 차 안에 둔 조건에서 제작진이 가능성을 시험한 것이다.
차가 ‘움직이는 컴퓨터’ 됐는데…보안 규제는 뒤처져
이번 실험이 주목받는 이유는 자동차가 갈수록 인터넷에 상시 연결된 ‘움직이는 컴퓨터’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량 제조사는 소프트웨어를 원격으로 업데이트하고 카메라·마이크·각종 센서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처리한다.
ABC에 따르면 올해 호주에서 EV와 PHEV는 신차 판매량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국 브랜드다. BYD는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 가운데 하나로 호주에서도 판매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그러나 호주에는 현재 자동차에 적용되는 최소 사이버 보안 기준이 없다고 ABC는 전했다. 호주 정부도 이런 공백을 의식해 연결형 자동차를 포함한 기기의 보안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호주 정부가 지난 6월 공개한 사이버 보안 전략에는 가정용 스마트 기기뿐 아니라 ‘연결형 차량’까지 보안 보호 범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호주 국내 정보 기관인 ASIO도 장관과 공무원들에게 차량 안에서 민감한 대화를 나누거나 업무용 기기를 연결하지 말라고 경고해왔다고 ABC는 전했다.
BYD는 개인정보 유출 우려에 선을 그었다. 회사 측은 호주 이용자에게서 수집한 데이터를 호주에 저장하고 있으며, 해당 데이터를 중국 당국에 제공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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